가리
오늘 11월 하순으로 접어드는 때. 이쯤 되면 어렴풋이 들려오는 낱말이 있다. 아니 조금 지나고 말았는가. 양력 시월 말쯤이어야 했는데 말이다.
어느 가을 한 중간의 날이었다. 거나하게 술 드신 우리 아버지, 아침 일찍 멋지게 차려입으시고 읍내에 나가셨는데 아직 뜨거운 열 품은 해 한참 남아있는 때에 귀가하셨다. 보기 드문, 좀처럼 이른 귀가셨다. 이런 날이면 아버지는 꼭 노래를 부르면서 대문을 열어제치셨다.
'가리가리 낯가리 둥가리 둥둥 쌓인다.'
가을 추수 시기가 되면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더욱 힘이 넘쳤다. 리듬의 변화도 가지각색이었다. 심혈을 기울여 창작하여 내뱉으시는 듯한 노랫말도 애절과 한탄과 기쁨 등이 버무려진 종합 세트였다. 추수 후 새 나락 등급을 매기는 공판일을 기대하셨으리라. 옛날에는 정부 주도의 나락 수매일이 있었다. 지금도 있으려나?
우리 아버지는 농사를 참 잘 지으셨다. 특히 쌀농사를. 물론 구체적인 일은 상일꾼이 다 했다. 아버지는 입으로만 하셨다. 어쨌든 우리 집 농사 관계 대표를 맡으셨으니 새 나락 추수 결과는 아버지 몫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거의 대부분의 추곡 수매일마다 우리 집 새 나락은 늘 1등급이었다.
내 몸이 자라고 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내 아버지의 노래 '가리가리~'에 대한 나의 열정은 물론 네덜란드의 화가 고흐의 작품으로 옮겨갔지만.
오늘은 우리 아버지 천지간을 호령하는 듯한 소리로 온 세상을 수 놓은셨던 자작곡 '가리가리~'를 떠올리면서 '가리'를 검색해서 공부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이용했다.
가리
명사
1. 단으로 묶은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차곡차곡 쌓은 더미.
2.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곡식이나 장작 따위의 더미를 세는 단위. 한 가리는 스무 단이다.
장작 한 가리.
볏-가리
1. 벼를 베어서 가려 놓거나 볏단을 차곡차곡 쌓은 더미.
벼 베기가 끝난 논에는 여기저기 볏가리가 쌓여 있다.
벼가리
낟가리
볏가리
순우리말로 된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 모음 앞에서 ‘ㄴ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볏가리’는 [볃까리/벼까리]로 소리 나므로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
한글 맞춤법 4장 4절 30항
햇대
명사 민속 → 볏가리.
샛별가리
[ 샏ː뼐가리/새ː뼐가리 ]
명사 방언 ‘볏가리’의 방언(경북).
명사 볏단을 십자형으로 더미를 지어 쌓은 볏가리.
베느리
명사 방언 ‘볏가리’의 방언(경남).
베테미
명사 방언 ‘볏가리’의 방언(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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