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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구겨서 끼워 넣어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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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겨서 끼워 넣어진 삶. 

 

 

발코니 1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베란다며 발코니에 관심이 많다. 거창하게 집 장사를 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줄곧 아파트에서의 삶을 살다 보니 화초 가꾸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연히 식물을 가꿀 수 있는 공간에 관심이 많다. 발코니도 적격이다. 오늘 출근길에 내게 붙잡힌 강의가 알고리즘으로 또 내게 왔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유튜브. 발코니에 얽힌 이야기를 안내하는 강의였다.

 

현 아파트에 있는 발코니가 베란다에서 어떻게 해서 '발코니'로 변신하게 되었는지를 말하는 내용이었다. 한 물체에서, 그 출발은 부속품이었는데 어느 순간 신의 은총을 입은 듯, 금값을 차지하게 된 사물 혹은 공간 및 시간. 발코니의 힘. 사실은 이미 있는 공간에 끼워 넣어진 것인데 현재 자본의 꽃값을 단단히 누리고 있는 아파트라는 데에 들붙어 대단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아파트의 발코니. 강의에서는 발코니가 결국 돈이 된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내 곤조에는 심심하고 재미가 없어서 걷어차고 싶은 것이었지만 어쨌든 세상사 그런 삶이 제법 있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재미있기도 했다. 교양 얻기 정도로 강의를 들은 나에게는 확장된 서비스 면적이며 발코니에 얽힌 '슬프고도 아름다운(유튜브 '언더 스탠딩'의 진행자 이진우 님의 언어)'이야기가 사실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객관적으로 들을 수도 있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복잡해지면 또 걸리적거리니까.

 

현재 나를 지배하고 있는 몇 주제들을 떠올려보니 발코니가 그다지 내 관심을 끌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가만 고개를 한번 돌리고는 갸웃거리면서 나의 생을 되짚어보니 내 귀에 확실하게 담은 글귀가 '구겨넣어진'이라는 낱말이었다.  '구겨 넣어진'. 강의를 다 듣고 내가 떠올린 것은 바로 내 인생이 결국에는 아파트의 발코니처럼 '구겨 넣어진 삶'이 아닌가 싶어졌다.

 

발코니는 건축의 역사 위에 끼어들고 아파트라는 고유명사에 삽입되어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는데 나의 삶도 발코니처럼 어디엔가 삽입되어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 것이다. 혹 삽입되어 살아갈지언정 발코니처럼 나의 본 생명체에게 이쁨받을 역할을 해내야 하는데 나는 그러하고 있는지. 발코니처럼 금값, 은값, 아니면 동이며 똥값이라도, 어쨌든 어떤 값은 해주고는 있어야 할 텐데 그러하는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발코니도 참 좋겠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똥값? 똥값도 온전한 것은 무척 비싸다는 것. 의학계에서는 말이다. 건강한 똥을 제시간에 매일 덩어리째 싸는 이들을 소중하게 모신다고 하지 않은가. 똥을 황금 모시듯 소중하게 싸서 곧 병원행을 한다지 않은가. 의학의 발전에 굉장히 기여하고 있다는 것. 그래, 어설픈 똥값이라도 좋으니 나도 뭔가 '값'은 해내고 있어야 할 텐데 그리하는지. 

 

사실, 돌아보면 성인이 된 이후, 즉 돈벌이랍시고 시작한 이후 내 삶은 나의 삶이 결코 아니었다. 삽입된 삶이자 사이에 끼워진 삶이다. 나를 고용한 주체에 의해 필요한 영역을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의 한 개체로 끌려 들어간 삶이다. 물론 나의 입장에도 필요해서 택하여 들어간 길이기도 하지만 나는 줄곧 나를 고용한 상대의 입김이 흘리는 셈을 그대로 살아낸 셈이다. 하라는 대로 하고 하라는 명령이 내려질 것에 대비해서 준비하고 있다가 내놓으라고 하면 곧장 내놓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 삶이다. 어떤 경우 유 목적 적인 것에 맞춤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어 조마조마했던 삶.

 

발코니는 그래도 제 몸을 뽐낼 수 있다. 주인이 가꾸어주든지 혹은 그 자체로 빛 나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환하게 자기가 속한 공간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혹은 자기를 키우고 있거나 지닌 주체가 즐겁게 놀 수 있는 튼튼한 놀이터가 되어준다. 건강하게 심령을 키워낼 수 있는 정신적인 성장을 위한 힘도 되어준다.

 

이런, 이탈리아식 발코니도 괜찮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나는 그렇지 못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말하자면 나는 그냥저냥 발휘할 빛을 키워낼 힘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있는 듯 없는 듯한 무의미한 존재로 삶을 겨우 지탱하는 덩어리인 채 세상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적당하게 서 있고, 적절하게 움직이고, 임시변통에는 넉넉한 존재로 살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옳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발코니처럼 빛도 광도 내지 못하여, 은값도 금값도 성스러운 동값, 혹은 똥값도 되지 못한 채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생을 지탱하고 있다. 

 

하여 나는 발코니의 우리 공간 '노대 (露 이슬로(노), 臺 대 대)'를 좋아한다. 이 층 이상(以上)으로 된 양옥에서, 이 층 이상(以上)의 방 바깥에 지붕이 없이 난간(欄干)만 하고 따로 드러나게 지은 대(臺). 난간(欄干)뜰. 아, 물론 발코니(balcony)라고들 한다. 어쨌든 나는 '노대'라는 낱말이 좋다. 우리식 공간이 좋다. 이는 그저 내뱉는 허튼소리에 불과하고, 나도 발코니처럼 끼어들 삶일지언정 언젠가는 값나가는 사람으로 좀 살아보고 싶다. 

 


글이 영 죽도 밥도 아니다. 우선 자고 싶다. 내일 먼 길, 한양으로 달려야 한다. 2주 연속 한양행은 무리이다. 내 연약한 몸으로는. 그래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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