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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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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냈다. 여름 타령을 기어이 하고 말았구나.

 

사죄의 염을 그림으로 올렸다.

 

 

녀석들. 결국 보내고 말았다. 하나도 아닌 둘을 보냈다. 아니 셋이 될 수도 있다.

 

순간이다. 순간이었다. 내가 녀석들을 바라봤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녀석들은 하룻밤 새 자기 색을 벗어던지고 말았다. 광복절, 온 민족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불렀다는 날, 광복절에 초롱초롱 초록의 싱싱함을 버린 녀석들. 괘씸하기도 했다. 좀 견뎌내지 않고서 말이다. 그냥 집채 내다 버리려니 했다가 광복절의 아침 손놀림을 시작했다. 백에 하나, 만에 하나, 아, 혹시, 혹시! 어떤 기운이 남아 있으려나 기대했다.

 

한 나절을 걸려 셋의 몸을 작게, 작게 줄여나갔다. 자기 몸뚱이, 저 안에 혹 아직 살아있는, 혹은 살아내고자 하는 어떤 힘을 안고 있지 않을까 싶어 깊이, 더 깊이 녀석들의 몸을 살펴 가며 잘라내고 깎아냈다. 잘라내고 잘라내고 또 잘라냈더니 함지박만 했던 몸이 쪼글쪼글 방탱이가 되어버렸다. 깎아내고 깎아내고 또 깎아냈더니, 아, 세계대전 중 수용소에 붙잡혀 있는 포로의 몸이 되어버렸다. 그토록 풍성했던 몸매가 확 줄어들었다. 이런, 자르고 또 자르면서 몸을 줄이면서 살폈으나 진초록 생명의 힘을 지닌 부분은 찾을 수 없었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내 탓이다. 속죄 삼창을 했다. 공휴일 오전을 깡그리 녀석들을 살피는 데 시간을 사용하였다. 올여름, 그 긴 장마까지 잘 살펴서 이겨내게 했는데 나는 녀석들을 결국 버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꿈틀거리는, 삐죽 살아내려는 그 어떤 낌새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풍성한 몸을 자랑했던 녀석들. 그 중~

 

'율마'이다. 이곳 블로그에서 몇 차례 내가 기르는 율마의 모습을 내보인 적이 있다. 자랑이었다. 올 초 이곳에 올리면서 했던 나의 다짐이 있었다. 올해는 꼭, 녀석들, 율마가 담긴 화분을 분갈이하겠노라고. 나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 일, 저 일, 일이 바빠서, 나의 능력을 심히 크게 평가하고 있는 양반들 덕분에 나의 일터 업무가 방만해서, 결국 내 일상을 누릴 삶의 힘이 빈약해서 나는 녀석들에게 새 집을 마련해주지 못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물 주기도 문제였던 듯싶다. 식물을 처음 만나면 눈여겨서 읽은 정보가 물 주기이다. 정신없었다. 어떤 사람의 정보를 택해야 할지 헷갈렸다. 어떤 이는 매일 물을 주어라, 어떤 이는 3일에 한 번씩 줘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게으른 나는 장마 혹은 건조기에는 10일에 한 번, 봄과 가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방법으로 길렀다. 잘 자랐다. 율마는 특히 아무 탈없이 잘 자랐다. 딱 한 번, 몇 년 전 어느 뙤약볕의 긴 무더위에 하루, 이틀 미루던 물 주기로 그만 가고 만 율마 한 그루가 있긴 했다. 제일 잘생긴 녀석이었다. 

 

아, 온전한 다섯 중 넷이 스러졌구나. 한 녀석을 살아낼 듯 싶고 남은 셋은 이미 안녕이다. 미안, 미안, 미안하다. 올봄에는 분갈이를 꼭 해야 했는데~

 

사람 죽은 줄 모르고 팥죽 생각만 한다더니 녀석들이 순간 갈변화로 몸을 사르던 밤 나는 아마 꿈속에서도 녀석들의 몸 다듬기를 하고 있었을 거다. 요즈음 틈나는 대로 녀석들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잎 떼어내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율마의 몸 매무새 단속을 위한 잎 쥐어뜯기를 한 후 맡을 수 있는 초록의 내음을 참 좋아했다. 율마 잎들을 만진 손가락을 코앞에 세우면 지구의 냄새가 났다. 살아있는 지구의 푸른 냄새가 덩실덩실 내 눈과 코 앞에서 신명 나는 춤을 췄다. 대견했다. 

 

여러 꽃 식물의 꽃 진 후 번잡함에 질려서 지난해부터 식물 키우기의 방향을 바꿨다. 열심히 바꿔가고 있던 참이다. 아파트는 아파트더라. 아무리 해 잘 드는 방향의 건물이라도 실내는 실내더라. 맨땅의 기운을 받지 못한 채 자라는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억지 놀음이더라. 인간의 욕심이더라는 결론에 다다라 되도록 실내식물로 판명된 관엽식물들을 키우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율마는 당연히 내가 앞으로 키우고자 하는 식물 목록에 들었다. 그것도 많은 수를 키울 종으로 말이다. 하여 현재 이십여 그루 가까이 삽목에 성공해서 기르고 있다. 아기 묘목 율마들이 잘 자라고 있다. 새 생명들에게 기운을 내주려고 성년을 사는 율마들이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사람이 천 냥이면 눈이 팔백 냥. 나는 내 좋지 않은 시력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녀석들 돌보기에 아낌없이 행동했는데 서운하다.

 

나는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녀석들, 나와 만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마 십 년 가까이 되었을 거다. 그 긴 세월을 분갈이 한번 없이 살아가게 했으니 지치기도 했으리라. 몇 년 전 보내던 율마의 찬란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다시는 후회하지 말자고, 열심히 분갈이도 하고 물 주기도 잘하고 잎 떼어내기도 바지런히 하자고 했던 다짐을 나 스스로 지켜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내 탓이다. 나는 바보다. 

 

올 가을에는, 이 더위만 지나가면 어서, 꼭!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고마운 율마 셋(혹은 넷. 몸뚱이를 깎은 녀석 네 개 중 셋은 완전히 가버린 듯. 둘인 줄 알았더니 다시 보니 셋이 갔다. 한 녀석을 살아 낼 듯도 싶다.)을 꼭 분갈이해 주리라. 앞으로는 정말로 뒤돌아서 후회하지 않도록 성년 율마며 묘목들을 잘 키워내리라. 그리고 꼭 한 가지 더! 화분들을 절대로 크게 키우지 않으리라. 손쉽게 분갈이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만으로 키우리니. 말하자면 탐욕을 버리려니. 제발!

 

블랙홀의 '깊은 밤의 서정곡'을 들으면서 잃어버린 나의 한쪽을 달랜다. 이 여름에 무슨 겨울이며 봄 타령인가 싶으나 요즘 내 맘은 겨울이더라.

 

내 곁을 떠난 율마들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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