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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구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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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마지막 토요일이다.   

 

 

 

나의 구월 마지막 토요일의 저녁 식사

 

 

오늘 나와 함께 숨 쉰 나의 화초들 1

 

 

오늘 나와 함께 숨 쉰 나의 화초들 2

 

 

오늘 나와 함께 숨 쉰 나의 화초들 3

 

 

6시 기상 알람에 눈뜬 이후 무려 네 시간여 가까이 내가 해낸, 모든 헛된 짓을 감싸기로 한다. 자, 이제부터. 멋진 토요일 만들기를 해보자. 살아보니 아무 때나 어떤 일이든지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늦지 않다는 정설이 맞더라. 왜? 인생, 그것 별것 아니므로. 우렁차게 자기반성을 한다. 오늘을 살기 시작한다. 현재 오전 9시 49분! 오늘은 내가 하는 일 순서를 되도록 아주 상세하게 적어보기로. 아자 아자, 출발!

 

야무진 출발 선언 끝 베란다의 보면대 앞에 섰다. 독서를 위함이다. 태양 빛세례를 받기 위함이다. 열 몇 페이지를 읽었을까. 중간에 집안 일처리를 좀 하느라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책이 읽히지 않았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에 이미 도착해 있다. 이토는 그 앞 예정된 중간 지역(봉춘?)에 내려 청군과 러시아군의 충성을 확인하고 있다. 안중근과 우덕순이 거사를 위해 옷을 사 입는다. 이발한다.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그곳에 나도 함께 있다. 여기서 멈췄다. 아이 관련하여 결정해야 할 일이 떠올라 관련 메일을 검색했다. 마음에 든 경우를 찾지 못했다. 다시 나가 보면대 위치를 바꾸고 그 앞에 섰다. 동안 세월 따라 햇볕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하루도 세월이고 한 나절도 세월이고 한 시간도 세월이다. 세월은 세월이다. 채 한 장도 넘기기 전에 거실로 들어왔다. 아니다 싶었다. 흐트러진 마음이 문자 해석을 거부했다.

 

영화를 봤다. 존 포드 감독의 <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였다. 달걀판 오르내리기와 두 다리 배꼽 위로 올려 걷기를 하면서 시청하였다. 무려 3일 만에 영화를 마쳤다. 내게 이런 일은 어쩌다가 한번 있는 일이다. 나는 영화 보기를 철저하게 한다. 사람들에게 부끄럼없이 말하곤 한다. 요강을 한쪽에 마련해 두고 영화 보기를 시작해요. 재미없는 영화는 아니었다. 유튜브 '일당백'의 정박 선생님이 보셨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봤다. 메가 TV 평점 3.7의 영화였지만 5점 만점의 4점대는 더 된 영화이다 싶었다. 이 평점은 내가 매긴 것이다. 검색해 보니 수정주의 서부 영화이다. 총에서 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영화였다. 내 평점에는 제임스 스튜어트와 존 웨인의 유명세, 그리고 정박 선생님이 보셨다는 것이 한몫 거들었다.

 

지난주는 피곤했다. 행사가 하나 있었다. 포기하려다가 상부에서 큰 관심이 있다며 메시지 채찍질이 가해져 별 수 없이 행해야만 했다. 참가하는 데에 의의를 두자고 해당자 셋을 뽑아 알아서 하라는 방식으로 맡겼다. 결과는 최상이었다. 지도자의 입장에 서면 큰 선만 제시해주고 참가자들에게 너희 맘대로 해 보라는 자유 마당을 펼쳐주는 것이 최선의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알아서들 잘할 것을 지레 겁먹고 참가 자체를 하려 들지 않았던 행사여서 별 것도 하지 않은 채 마음만 무거웠던 셈이다. '연륜'이 자랑이 아니더라. 풋풋함이 지닌 무한 가능성이 진짜더라.

 

평소 작업과 다른 작업도 또 한 가지 있었다. 매일 뇌와 입과 손의 움직임만 필요한, 내가 하는 작업이 아닌 온몸으로 뛰는 것이었다. 쉽지 않았다. 돌아보니 내게 우선 준비가 부족했다. 기어코 해내고자 하는 의욕이 부족했음을 고백한다. 함께 뛰는 이들의 소란스러움이 나의 육신이며 정신을 지하 세계의 맨 아래 한 점으로 꼬라박았다. 이를 견딜 수 없었다.

 

한계를 넘어선 요구를 내게 해 왔다. 오직 각자 생각만을 앞세워 내 힘을 빌려달라 했다. 옆 사람을 돌봐주는 나를 견디려 들지 않았다. 참아내질 않았다. 끊임없이 나를 불렀다. 마구마구 나를 붙잡아가려고만 했다. 왜 자기에게 오지 않는지, 왜 나 아닌 그에게만 오래 머무는지, 왜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지를 들어 나를 질타했다. 나는 힘이 부족했으며 한 몸밖에 되지 않았다.

 

내게 주어진 일은 시퍼렇게 젊었고 나는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링겔맞기로 하루를 마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게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일이 끝날 시각이 되었다. 퇴근시각이었다. 어떻게 추슬러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거짓말인양 잠시 후 정상에 가까워진 몸과 정신에 또 얼마나 기겁해야 했던가. 인간이란 참 지독한 존재이다. 일터인들 중 가장 늦게 퇴근하는 찌그러진 성실함까지 드러내고서야 금요일 밤을 맞이하였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 두 행사 모두 일단 하지 않으려 들었던 내 모습이 발견된다. 살다 보니 너무 빤한 일들이 많아 이 일 저 일 다 하려 들면 자칫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이 나를 크게 지배했다. 더군다나 권력으로 밀어붙인다는 생각이 나를 뒤틀리게 했다. 앞으로는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나서서 해보려 해야 할 듯싶다. 무대 전반에 내가 나설 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풋풋한 세대가 할 수 있도록 안내 해야 할 일이다. 자고로 지난주 내 생활이 힘들었던 것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지나치려다가 긁어 부스럼이 되게 한 결과이다. 반성할 일이다. 반성한다.

 

다시 오늘로, 지금 이곳으로 돌아온다.

 

영화를 끝내고 한양 땅 바로 손위 언니와 통화를 하였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 걱정을 삼십분여 풀어놓았다. 내가 답을 줄 수 없어 늘 안타깝다. 인연이다 싶으면 순간 해결될 것이니 걱정 놓으라는 통화의 마지막 대사를 남겼다. 

 

 

 

나 혼자여서 점심은 간단하게 먹었다. 숟가락의 높이를 깎아 채운 밥 열 숟가락 정도의 탄수화물을 취하였다. 내가 담은 파김치와 묵은지 네 조각에 내가 담은 마늘과 청양고추 장조림으로 찬을 얹었다. 내가 만든 요플레 열 스푼에 아몬드 여덟 조각, 호두 알맹이 다섯 정도, 쿠키 한 조각과 포도 열 알 정도를 섞어 먹었다. 점심의 마지막 순서로 원두커피에 꿀 세 스푼 정도를 섞어 마시는 중이다. 눈 뜨고 처음 입으로 맞이한 즐거움이다. 

 

 

나의 저녁 식사 중 주식은 여러 야채 올리브유에 볶음 위에 모차렐라 치즈 한 바구니를 얹은 것

 

 

점심 후 분갈이를 위한 준비를 하느라 인터넷을 돌아보다가 중지하였다. 해당 화분들이 너무 많아 벌써 머리 무겁다. 다이소 판매용 배양토를 몇 봉 사다가, 있는 흙에 몇 주먹씩 섞어 임시 화분 분갈이를 할까 싶어졌다. 게으름뱅이는 절대로 화초를 기르면 안 된다. 알고리즘이 유튜브 다음 영상으로 분갈이 영상을 보여줘서 혹 가벼운 흙으로 하는 분갈이가 있지 않을까 더듬어봤다.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의 영상들이었다. 이어진 알고리즘이 사진 찍기였고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찍는 방법을 몇 배웠다. 중간에서 그만뒀다. 어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김훈 선생님이 쓰신 <하얼빈>을 읽고 있다. 반 정도 읽었다. 오후 3시 24분이다. 어서 읽자. 김훈표 문장이라 여겨질 만큼 딱 김훈답게 쓰신 문장들. 김훈을 제대로 느낀다는 생각을 김훈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해 왔다. 문장이 유려하다. 배우고 싶고 익히고 싶다. 어서 읽자. 

 

나의 저녁 식사 부식 1은 달걀 프라이 둘에 사과 한 쪽에 피클 두 조각

 

 

소설 읽기가 4분의 3.5까지 와 있다. 오늘 끝까지 읽고 잠들까 싶다. 내 마음을 흔들었던 문장들을 베껴두고 싶다. 

 

나의 저녁식사 부식 2는 무 동치미 꼬마 조각 넷에 국물 몇 스푼

 

저녁을 먹었다. 혼자 밥이다. 주식은 각종야채 볶은 것 위에 모차렐라 치즈 한 주먹 얹어 유사 피자 만들어 먹기이다. 치즈의 양을 줄여야 하는데 미약한 인간은 치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달걀 프라이 둘에 사과 한 쪽을 더한다. 속이 대릴 것에 대비해 무 동치미 조각 네 쪽에 국물을 몇 스푼을 떠먹는다. 마지막으로 수제 요플레에 견과류 예닐곱 종을 섞어 먹는다. 견과류 씹히는 맛을 참 좋아한다. 나는 분명 애정결핍증이든지 욕구불만증이든지 분노축적증이든지 무엇인가에 연결되는 것이 확실하다. 

 

나의 저녁 식사 마지막은 내가 만든 수제 요플레에 견과류 예닐곱 종을 섞어 먹기 - 사진 좀 이쁘게 찍을 것을!

 

오후 8시 26분 현재. 오늘은 일찍 일기를 올리고 김훈의 <하얼빈>을 마저 읽을까 한다. 실내운동을 하면서 영화 한 편을 보다가 아날로그형 공책일기를 마저 쓰고 잠에 들 것이다. 아침나절 서너 시간의 낭비로 하루가 참 짧다. 이도 반성한다. 김훈 선생님의 문장을 열심히 읽는 행복으로 반성의 염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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