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순간'이라는 낱말을 왜 적어두었을까

반응형

 

 

 

'순간'이라는 낱말을 왜 적어두었을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말이다. 

 

 

베란다 정원에 핀 앵초

 

 

내일, 월요일 출근 연습을 위해 오늘 아침은 어서 이불 속을 나오자 했다. 그런데도 무려 8시 30분이나 되었다. 강의를 들으면서 화분에 물 주기를 하고 있다. 이어폰 접촉에 문제가 생겼다. 핸드폰을 바로잡으려는데 카톡이 읽힌다. '순간'이다. '나'에게 보내는 '나'의 톡 내용이다. 수 없는 횟수의 미끄럼틀을 반복한 후에야 들었던 어젯밤 잠이었다. 대체 어떤 생각 끝에 '순간'이라는 낱말을 적어두었을까. 분명 오늘 글의 주제로 쓰려는 것이었을 것이다. '순간'이라니. '순간'이라는 낱말을 빌어 오늘 무엇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순간. 어젯밤 나를 쉽게 잠 못들게 했을 이 낱말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눈 깜짝할 사이, 결정적인, 순식간, 일순간, 즉시 등으로 뜻풀이를 할 수 있을 이 낱말. 나에게로 온 나의 톡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순간 잠들기 전 영화를 보던 순간 물밀' 이다. '물밀'은 또 무엇일까. 잠이 내게 쏟아져 덮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완전한 낱말을 쓰지 않은 채 톡을 마쳤을까.

 

'물밀듯이'였을까. 제아무리 생각해 봐도 '물밀'에 이어지는 것은 '물밀듯이'밖에 없다. 다음 '잠들기 전'이 있다. 잠들기 전. 나는 보통 잠들기 전에 영화를 본다. 한쪽에는 스마트 폰 유튜브의 수면 명상을 켜 둔다. 운이 좋아 영화를 보다가 자울자울 잠에 취했음을 느끼는 순간 텔레비젼을 끈다. 수면 명상에 나의 밤을 기댄다. 쓰다 보니 '순간'이라는 낱말이 문장 속에 있다. 분해해본다. 느끼는 순간. 잠이 왔다고 느끼는 순간. 굳이 오늘 일기감은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던 순간'을 분해해 보자. 영화. 어젯밤 잠들기 전에 보던 영화는 <해리 브라운>이었다. 

 

<해리 브라운>. 메가 TV 영화 창에서 존 포드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난 후 추천 영화 목록 속에 이 영화가 있었다. 19금에 주목하였다. 스릴러를 찍었다. 평점 3.7이상의 영화는 본다. 조건에 맞았다. 주연이 명배우 '마이클 케인'이었다. 아련히 떠오른 기억 속의 댓글도 있었다.아니 어젯밤 영화를 보기 전 검색창에서 읽은 문장인지도 모른다. '늙으면 문제야'던가, '늙은이가 문제야'던가, 아니 '늙은이가 불쌍하다'였던가, '늙으면 죽어야지'였던가. 언젠가 봤던 영화였던지 아니면 언젠가 알게 된 영화로 꼭 보고자 했던 영화였으리라. 사실 요즘, 아니 몇 해 전부터 나는 '늙음'과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어쨌든 어젯밤 나는 왜 오늘 쓰려는 글감으로 '순간'을 붙잡아둔 것일까. 

 

전어회로 혀가 즐거워하다.

 

 

물 주기를 끝낸 후 아이가 또 주문해 온 파김치를 담았다. 오전이 훌쩍 갔다. 어제 끝까지 읽으려던 책은 오늘 오전에도 손대지 못했다. 영화를 마저 보자 싶었다. 영화는 4분의 1.5쯤에서 멈췄다. 어제 외출했다가 오늘 오전에 돌아온 또 한 사람이 전어회를 몽땅 사 들고 왔다. 1킬로에 3만 5천원이나 되는 것을 사 왔다고 사 온 테를 유독 강하게 낸다. 내가 얼마나 전어회를 사랑하는지를 알고서 부리는 유세이다. 어제 다 못 읽은 책도 놓아두고 그리려던 그림도 멈추고 영화도 멈췄다. 정말이지 전어회는 입 안에서 살살 녹았다. 1킬로의 반을 점심 때에 먹었다. 물론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순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어회로 혀가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고 난 후 아, 순간 떠올랐다. '순간'은 '순간'이었다. 순간은 진정 '눈 깜짝할 새'였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려던 '순간' 듣게 된 음악이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라는 송창식과 정훈희의 듀엣곡 '안개'를 듣던 '순간'이었다. 물밀듯이 밀려드는 온갖 것들, 내 인생의 서정들, 내 삶의 굴곡들, 내 여생에의 간절한 무엇 등. 우연히, 정말 우연히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컴퓨터의 모니터를 끄려던 순간 유튜브 창을 어찌 어찌 조절하려는데 보게 되었고 듣게 되었다.

 

'안개'를 써 올리려다가 '안개'에 대한 감상 소감을 온전한 글로 써 올릴 때 캘리도 쓰기로 하고, 오늘은 예전에 써 둔 송창식 선생님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편집하여 다시 올린다.

 

 

어느 텔레비전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 두 분이 출연했나 보다. 그곳에서 부른 장면의 유튜브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직 영화 '헤어질 결심'을 보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 쟁여뒀다가 어느 날 문득 떠오르면, 도무지 이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날 보려고 아끼던 참이었다. 소문으로만 들은 둘은 음악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절대로 듣지 않으리라 마음 다지고 있던 참이다.

 

그러나 결심을 깨뜨리고 말았다. 영상을 켰고 음악을 들었다. 나는 눈물을 훔쳤다. 나 혼자 있는 밤이 다행이었다. 송창식은 역시 송창식이었다. 정훈희는 역시 정훈희었다. 아날로그 공책 일기까지 마친 후 영화 <해리 브라운>을 보려던 순간 조금 전에 들었던 영화 음악이 떠올랐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아련함을 다독거리지 못한 채 나는 아마 다시 한번 솟구치는 눈물을 훔쳤으리라. 

 

어제 처음 듣고서 연속재생으로 예닐곱 번을 더 들었다. 그때 심정은 온전할 글로 다시 써 올리리라. 여전히 <안개>가 흐른다. 이 밤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 마냥 묻혀 있고 싶다. 내 이팔 청춘이 이랬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