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이곳 티스토리 블로그의 '글쓰기'에 열여섯 개의 글이 임시 저장되어 있다. 홈그라운드라고 해야 할까. 본부가 고장 났다는 것을 확인하자 더 많은 글감이 떠올랐다. 토요일 이후 임시 저장에 추가된 것이 열 편은 되리라. 부디 끌어내어 완성된 글을 만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글 문서에 저장된, 역사의 궤가 깊은, 다른 곳 블로그에 저장된, 본 궤도에 못 오른 아이디어 정도의 글들이여, 미안하다. 나의 손길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끌어올려야지.
며칠 느긋했다. 토요일 밤 자정 무렵이었다. 이곳 홈이 열리지 않았다. 내 잘못이려니 했다. 퀴퀴한 냄새를 진하게 흘리는 우리 집 데스크톱 컴퓨터가 문제이려니 했다. 나와 한 집에 거주하는 또 한 사람의 노트북을 빌려 쓸까. 내가 컴퓨터만 만지면 이상한 것들이 모니터에 오르고 내린다는 말을 이 평생 해오는 이에게 빌려줄 것을 말하기가 거북스러웠다. 너는 데스크톱, 나는 노트북이다. 으흠, 데스크톱이 구식이라며 불만을 터뜨릴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여 신식 패드를 덤으로 줄게. 어린아이들 물건 교환 놀이를 하듯 분배하여 사용하고 있는 터라 더더욱 내 것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경험도 있지 않은가. 몇 달 전 이곳 홈이 열리지 않았을 때 내 힘으로 해결했던 값진 역사가 내게 있지 않은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공공연하게 내놓은 공언은 자정이 되기 전에 그날그날 아침 일기 올리기를 실천하는 것이었다. 경험이 상왕이다. 금방 해결해낼 수 있으리라. 기억을 되살렸다. 타 플랫폼에서 검색을 시행했었지. '티스토리 블로그가 열리지 않을 때~ 블라블라~.' 몇 번 검색 창에 문구를 넣었지만 떠오르는 창이 얼마 되지 않았다. 열린 곳마저 맹탕이었다. 그럴싸한 내용이 없었다. 검색어에 따라 올라온 방도 알맹이를 찾을 길 없는 허공이었다. 얼마 후에는 그곳 타 플랫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듯했다. 이전과는 영 다른 상태였다. 아니 토요일 오전에 아침 일기를 쓰던 때의 상황과는 딴판이었다.
초조해졌다. 그날, 토요일은 나의 아침 시작 시간에 이미 온전한 아침 일기를 써서 임시 저장을 해 둔 터였다. 콩당콩당 쿵덩쿵덩, 비슷하나 다양한 형태의 심장 박동이 진행되었다. 아침 시간에 편집까지 끝냈는데. 올리기만 하면 되는 일기였다. 종일 여유만만한 흥을 머금고 몸을 움직였다. 아마 이것저것 꽤 생산성 있는 일도 해냈으리라. 말끔하게 써 놓은 아침 일기를 못 올리다니. 인간이란 그렇지 아니한가. 자기 자랑을 하지 못할 때의 삭막해진 심사란 얼마나 고약한 맘보가 되는가. 당해본 사람만 안다. 작은 일이거나 큰일이거나 일의 크기만 다를 뿐이다. 이미 완성해놓은 어떤 일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싶어 몸부림치기는 일의 크기에 상관없다. 그 몸부림을 풀어내지 못할 때의 실망감의 무게는 크게 다를 바 없다. 진짜다.
책임감을 통감했다. 그렇다. 내 기계가 고장 났다? 기계 탓이라고 아무리 변명해도 소용없다. 세상의 눈은 일단 확인되는 현상만을 직시할 뿐이다. 네 탓 내 탓을 따질 때가 아니다. 현실을 보라. 안 된다. 안 된다는 것이 문제이지 기계를 탓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설령 기계가 일을 저질렀다 치자.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그 기계를 만들어서 어떤 곳에 들어 앉혀 꿰어놓고서 들이 파먹은 존재가 문제이다. 기계를 향해 무슨 탓을 하랴. 그래, 내가 문제다. 나는 어쩌자고 수십 년을 컴퓨터와 살면서 어느 창호와 소통하는 것마저 제대로 실행하질 못하는가.
인간은 얼마나 어리숙한가를 절감했다. 내 디지털 해결력을 한탄하면서 한숨 돌리자는 생각에 켠 텔레비전의 속보가 내 뒤통수를 격하게 밀어쳤다. '속보'였다. '펑' 뇌 한쪽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분명 아무도 나를 향해 덤비는 이 없으나 나의 인지 능력을 향해 날아오르는 화살이 있었다. 내 머리통을 향해 던져지는 물질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럴 수가 있는가. 아하, 이럴 수가 있었구나. 오호라,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구나. 어허, 나는 참 순진무구하구나. 수천, 수백만 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터뜨리는 불꽃 함성을 감당할 힘이 내게 있지 않았다. 허무했고 허전했고 공허했고 허허로웠다. 공은 공이고 무는 무로구나. 인생사, 그것이 그것이로구나.
짐 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인가도 실감했다. 그토록 가벼울 수가 없었다. 오늘, 목요일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까지, 아니 이곳이 정상 가동된다는 것을 확인하기까지 참 태평스러운 날이었다. 며칠 랄랄랄라 온몸이 가벼웠다. 평소 나를 무기력증으로 이끌곤 했던 그 어떤 것이 있었던가 할 만큼 내 며칠 생은 온통 가뿐함이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헉헉거리면서 오르던 산은 모두 평지로 변해 있었다. 출퇴근길 그 화려했던 일 년생 화초밭이 까까머리로 변한 채 몇 송이 꽃만 덩그러니 남아있는데도 그리 아프지 않았다. 변명을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아침 일기를 올리지 못한 것은 나의 실수가 아니다. 내 게으름이 아니고 내 태만함의 소치가 아니로다. 내 방정맞은 생의 흐트러짐이 아니며 내 오만불손한 생의 자세가 아니로소이다. 본 공장이 가동되지 않음으로 나는 당연히 일기를 써 올릴 수 없는 것이다. 아하, 당연한 변명을 내배앝을 수 있는 달콤함이여. 어느 누가 얼마나 내 아침 일기를 기다리랴만 내가 공식적으로 문자화하여 실천하겠다고 나선 아침 일기 쓰기가 얼마나 무서운 짐이었는가를 실감하기도 했다. 일은 함부로 장만하고 공언하는 것이 아니구나.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근본'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직시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다시 공장은 본 궤도면에 올라섰다. 아침 일기를 건너뛸 수 있는 날이 끝났다. 한편 한없이 늘어지고 끝없이 무량대수로 변하려 하는 내 본능의 처짐 변수가 무섭기도 했다. 가라앉음을 가라앉는다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우선 마음 편하여 노니는 내 육신이 도달하려는 곳은 태만의 본고장이었다. 즐거이 노닐면서도 더이상은 안 된다는 자기반성이 끝없이 끓어오르려던 참이었다. 내가 '나'로 살고자 하는 근본에 자리한 힘이 고마웠다. 공장의 가동 여부를 떠나 오늘쯤은 다시 아침 일기를 매일 완성할 참이었다. 나를 나로 살게 하는, 내 정신의 중심을 오롯이 차지하고 있는 어떤 힘에게 감사한다.
그립다. 어쨌든 디지털이 지닌 한계를 실감한 터다. 그 옛날이 그립다. 아날로그가 그립다. 중지 첫마디에 굵은 살로 남아있는, 그 옛날 연필 등의 필기도구를 부여잡고 종잇장에 부지런히 글을 쓰던 날들이 그립다. 며칠 우리는 어디를 다녀왔을까.
블로그 친구님들이시여, 궁금하더이다. 어찌 지내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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