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하다'를 갖춰 입자
조금은 얇지 않을까. 여름 끝자락에도 제 민얼굴 내놓기에 인색하던 양쪽 팔뚝이 마음에 걸렸다. 쌀쌀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기온의 아침이다. 양 팔뚝은 이 기세에 겁을 먹고 미리 숨을 죽이는 것이 아닐까. 그렇잖아도 좁은 어깨가 안으로만 꼬아 들어가면 지레 겁을 먹은 뇌도 안으로 기어들리라. 오늘 하루도 사고의 폭을 넓히지 못한 채 좁은 영역을 살게 되리라. 내 업에 영역이라야 빤한 일이지만 팔 길게 뻗어 하늘바라기 하는 운동에도 게으름을 피우리라 싶어 걱정되었다. 가슴 쭉 펴고 하루 온전히 살아야 할 텐데 이를 어쩌나. 씩씩하게 살자고 아침 일찍 일터로 가는 것인데 말이다.
공기 중에 정면으로 노출되는 내 살과 근육이며 뼈까지 들썩이며 짜증을 부렸다. 아침 출근길 내내 주인에게 투정이었다. 어이쿠, 살아온 세월이 부끄럽지도 않나. 이만큼 세상을 살았으면 하늘 표정만으로도 가늠해야 하지 않은가? 옷 한 벌을, 날짜와 날씨에 맞게 입을 줄을 모르는 사람이군. 지독하게 낮은 판단력을 사는군. 그렇다고 탑을 긴 팔로 입기는 또 아니다. 한낮으로 접어들면 기온은 사뿐 여름 쪽으로 고개 숙인다. 등줄기가 후끈해진다. 분명 온전한 가을 한가운데에 선 날은 아직이다 싶은 생각이 낮 동안은 드는 것이 사실이다. 몇 분 생각 끝에 요 며칠 입던 종류의 의상으로 출근했다. 여름옷 다음 순서의 것이다.
의상은 외투를 일컫는다. 외투라는 것이 참 그렇다. 오늘 내가 입고 나온 외투 말이다. 요것이 거참 묘하다. 어떤 날씨에 맞는지 헷갈린다. 아마 내 젊음의 시절 색상과 디자인이 의상 구매 기준이었던 때 내 생에 끼어들게 든 것이리라. 천의 두께며, 살펴보면 빤히 구별되는 것이 옷인데, 언제 입을 것인지가 애매하다. 말이 되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의상을 꺼낼 때마다 머뭇거린다. 입을까, 말까. 오늘 날씨에 어울릴까? 혹 한낮이면 더울 수도 있는데. 또 오늘 날씨에는 맞을까? 아냐, 천이 너무 얇아 추울 거야. 아, 추워졌어. 이 옷을 입을 때는 이미 지났어. 갈팡질팡하다가 어느 해는 단 한 번도 못 입은 채 지나치기도 했다. 참 편하고 참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라서 늘 입고 싶은데 말이다. 그래? 헷갈리면 각오하고 직접 해 보라. 뭐, 그것이 그리 어려울까.
맞아. 그래, 해 보자. 대강 맞겠다 싶으면 입자. 그제 그리고 오늘 입어 봤다. 한데 현장에 뛰어든다는 것이 어찌 완벽하던가. 일상이 늘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던 것과는 영 다르다. 그러려니 했는데 나 자신이 무지렁이가 아닌가 싶을 만큼 뜻밖일 때가 있다. 대체 어쩌자고? 여러 가지 횡설수설이다. 애매한 현실이다. 빗나가는가 하면 정반대의 길을 가게도 한다. 반대로만 끝난다면 그나마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가로와 세로에 더해서 어슷한 선까지 겹쳐 그려져서는, 여러 가정이 현실화되어 벌어지는 현상은 혼돈이다. 세상에 이럴 줄을 어찌 알았겠나 깜짝 놀랄 지경에 이르게도 한다. 가설과 예상과 추측과 짐작은 그것으로 그것이더라. 현실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더라. 오늘 걸치고 나온 외투도 그렇더라. 사실 그제는 더 그랬다. 아침 기온과 맞지 않았다. 기온은 급격하게 낙하했고 외투는 너무 가벼웠다. 날씨는 겹으로 싸늘해졌는데 몸의 가장 바깥 부분에 걸친 천은 심하게 나풀거렸다.
일단은 간절기 옷이다. 그렇다 여기고 구매한 것이다. 봄과 여름 사이, 여름과 가을 사이를 적당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기간이라 생각했다. 하나 의도에 맞게 옷을 착용한다 쳐도 영 어울리지를 못하더라. 나날이 문제가 되더라. 봄 기온이 더 강하게 버티는 날이면 아직 걸칠 때가 되지 않았음을 내 살들이 떨면서 드러내더라. 이미 인사를 나누었던 봄에 미안하더라. 여름살이 제법 남은 날이면 후끈 넘치는 기운이 있어 땀까지 생각이 나더라. 가을 입구라 하여 작정하고 꺼내 입은 것이 이미 때가 아님을 서운해하더라. 도대체 이 옷은 언제 입을 것인가.
믿어지지 않겠지만 십 단위의 햇수를 나와 함께 한 외투이다. 반 민소매형 검은 탑과 일자형 봄가을용 바지가 한 세트이다. 외투를 사 와 어울린다 싶은 상하의를 맞췄다. 내 눈이 지닌 기준에 의하면 외형으로는 '딱 맞는', 제대로 된 세트가 되었다. 요즈음 날씨이면 열심히 입을 때가 되었으려니 하는데 그제 올해 들어 처음 입었던 날 첫 바깥 걸음에서 내 살들이 오돌오돌 의성어와 의태어의 융합을 읊었다. 더운 기운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부지런히 걸었는지 모른다. 하여 어제는 다른 옷을 입었고 오늘 다시 이 외투를 입었다. 이틀 째다. 내 패션 1년 착용 방법 및 계획에 따르면 줄곧 입어야 맞는 옷이다. 적어도 2주일을. 이래 저래 적절한 시기를 찾는다는 것이 참 어렵다.
적절하다. 이에 맞는 기준은 무엇일까. 기준은 왜 만들었을까. 내가 남을 판단하는 기준의 근본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시월 아침을 부지런히 걸었다. 아침 기온에는 이미 지났다 싶은 외투였다. 긴 길이를 휘휘 휘날리면서 걷는 가운데 몸을 사리는 내 살덩이들에게 미안해해야 했다. 가만가만 잇따라 따뜻한 말로 두드리면서 달랬다. '곧 더워질 거야. 이쯤 낮은 기온은 아무것도 아니야. 다음 주부터는 일기예보를 더 자세하게 살필게. 신중하게 판단하여 옷을 입을게. 이 편안한 외투로 2주일을 내리 살아랴 하는 것이 내 격에 맞다. 쌀쌀함을 견딜 수 있는 몸이 될 수 있게 해야겠다. 또 다른 적절함을 갖춰야 되겠다. 목도 따뜻한 천으로 감고 배를 좀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상의를 겹으로 입자. 세트화에서도 벗어나자. 탑도 반 민소매에서 반 팔로 방향 전화를 하고 바지도 좀 더 두꺼운 천으로 입자. 적절함이란 결국 당사자가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