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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유목을 위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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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을 위하여 2

 

 

 

아침 출근길

 

 

어제 일기가 어디까지였을까. 아마 유목생활의 본론을 걷던 중 멈췄을 것이다. 비너스상은 구석기시대의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며 바이칼 호수까지. 청금석 라피스(?). 라피스라줄리(?). 어젯밤 일기에 탑승하지 못한 낱말들이다. 아마 유목민들의 이동에 따라 문명이 전달되고 문화가 전달되었다는 것에 대한 근거 자료들일 것이다. 조각 잠으로 산산조각이 난 어젯밤의 불면은 어제 일기에 마저 써넣으려던 내용들을 대부분 뇌의 밖으로 날려버렸다. 아직 희미하게 남아있는 실크로드를 더 가보자.

 

중국 한의 무제가 장건을 서방에 보낸 것은 대월지(한대 중앙아시아 터키계가 살던 곳)에 군사적 동맹을 맺기 위해서였다. 그는 흉노족에게 잡혀서 심한 고생을 했다. 최첨단의 오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상황은 무기라는 매체에 의한 것이다. 끔찍하다고 안방에 앉아 보는 우리들은 중얼거린다. 장건이 당한 고통은 어땠을까. 현시대 못지않은 생사 초월의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당시 죽음이란 산 채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시대였다. 타인, 혹은 타 종족의 죽음에 대한 그 어떠한 예의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을 지레짐작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문 밖으로 사람을 보낸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곳곳이 피어간다.

 

 

현대 중국의 일대일로의 핵심은 장건의 실크로드와 그 목적이 같지 않을까. 당 태종의 실크로드에는 또 어떤 의도가 실렸을까. 당도 그랬다. 실크로드가 시작되면서 두르판(중국 신장 주변)을 점령했다. 그곳을 다스리기 위한 본격적인 기관도 설치하였다. 돌궐 등 주변 유목민족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즉 유목인들은, 실크로드라는 공간을 공동 소유하고 있는 셈이었다. 유목민들은 실크로드를 존중했다. 실크로드의 주변 국가들은 일부러 개척하여 이름까지 붙여가며 참 실크로드 위를 걷던 유목민들을 경계하였다.

 

유목민족은 자원이 없는 땅에서 잉태된 생명체들이었다. 태초에 인간에게 부여된 수많은 조건들 중 의식주가 삶의 근본이다. 인간사에는 최소 생활을 위한 다양한 물품이 필요하다. 차와 커피가 문제가 아니다. 원시적인 삶, 거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무마시킬 수 있는 보완재가 필요했다. 유목민족이 유목을 해야 했던 이유이다. 몽골, 중앙아시아 등 거친 환경일수록 자연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화려한 유목을 운행하였다. 

 

어느 강가에서 보내온 오늘밤 달

 

화려한 색깔의 영양가 있는 보조제를 소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몸에 고가의 물건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떠돌아다니는 어느 곳에 선들 푸르뎅뎅한 적군의 실체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선 교환하고 팔아야 할 물건이 있어야 했다. 살아낼 수 있을 건강한 어떤 것이 필요했다. 당신들의 육신이 유지되고 정신을 이끌 수 있는 귀한 물건이 필요했다. 살아낼 수 있어야 했다. 이동 중에도 한두 푼 모아지면 금덩이를 사서 들고 있어야 했다. 유목민들의 생활사였다.

 

금을 들고 다니라. 부담 없이 금 10킬로를 상비하라. 백만 달러가 넘어가는, 현 시가 5,60억 정도의 금을 가지고 있으라. 금뿐만이 아니다. 뭔가 다른 물건을, 남들이 두 눈 크게 뜨고 달려들어 관심을 표명할 다른 물건을 가지고 와라. 교역이 안 되면 약탈이었다. 천고마비(天高馬肥)라는 생생한 드라마의 주인공 흉노족이 이를 제대로 운영하였다. 약탈도 쉽지 않았다. 약탈 과정에서 발생하는 희생은 보복이라는 악순환 열차를 운행시켰다. 어쨌건 이동은 힘들었다. 결국 유목민족을 포함하여 주변국으로 위치한 여러 나라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유목민족은 유목을 위한 유목생활을 건강하게 해야 했다. 주변 국가들은 유목민족의 침입에 대비한 생활이 필요했다.

 

유목이든 정착이든 튼튼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 달성의 목표도 진화하였다. 물자가 아니라 정기적인 조공, 상납이 필요했다.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협상을 한다. 조공을 바쳐서 인질을 데리고 가게 한다. 여진족의 조선인 납치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자기네들에게 필요한 물자의 안전한 확보를 위한 평화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어떻게든 살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상대를 협박한다. 혹은 달랜다. 유목민의 속성은 초토화가 아니다. 결코 상대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정착을 해내지 못한 자기네들의 속살을 보호해 줄 귀한 것들을 얻을 수 있는 사람 사는 곳이 필요했다.  

 

몽골을 살펴보자. 몽골은 대국 중국을 상대로 뭉쳐야 했다. 중앙아시아 유목으로는 부족했다. 저항하고 세력을 키우다가 한때 온 세상을 점령했다. 몽골은 대국 중국에 대한 거친 포효에서 시작되었으리라. 한국도 마찬 가지였다. 주변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대국이 되어야만 했다. 꾸준히 움직여야만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주변 강대국 틈에 낀 샌드위치 신세의 대한민국을 다행히 여겨야 할까.

 

시(時)가 중요한 농경민. 시간적으로 축적된 경험에 의해 사시사철, 24절기에 따라 생명을 키워내는 산업. 천시(天時)가 중요했다. 하늘의 힘. 농사에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장마며 가뭄이며 인간사를 뒤흔드는 자연재해들 앞에 묵묵히 기다려야만 했다. 하늘의 뜻을 우러러봐야만 했다. 기우제가 그랬다. 

 

현대사회에서 천운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은 답이 없다. 눈 깜짝할 새 천지 요동하는 시기에 이미 도착해 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정착민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이동을 꿈꾸는 삶이어야 한다. 육신도 그렇고 육신을 거느린 정신도 마찬가지이다. 돌며 돌며 돌아야만 살아갈 구멍이 생긴다. 우주는 돌고 돌고 돌아온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남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살 수 있는 시대이다. 한 개인으로 탁월한 힘을 발휘하는 천재를 위시하여 한 명의 천재가 하늘의 힘을 부릴 줄 알게 할 수 있는 만 명의 영재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진정 노매드 시대이며 유목 시대여야 한다. 살아 움직여야만 한다.

 

나는 아마 천생이 유목이었을 것이다. 어젯밤 회식에 그 얼마나 배가 불렀겠는가. 오랜만에 나눈 대화들 속에서 입술은 얼마나 꽉 찬 힘으로 다져졌겠는가. 슬로 슬로 리듬으로 들이킨 소주가 대여섯 잔은 되었으니 식도는 또 얼마나 탱탱 부었겠는가. 신체 이곳저곳이 힘에 부쳐 노곤해졌을 텐데 정작 잠의 수면은 부풀지 못했다. 축 처졌다. 잠에 들었던 자정 무렵부터 기상 알람의 여섯 시까지 대여섯 시간을 눈만 감은 채 밤을 떠다녔다. 냉장고 가동의 소리가 생생하게 두 귀에 접목될 정도로 정신이 말짱했다. 감은 눈 속에서 시신경의 저항은 심했고 혀는 바싹 타들어갔다. 주류의 힘이었다. 유목을 세웠다가 채 유목을 완성하지 못한 일기 때문이었을까. 딱 삼십여 분 정도 눈을 감았을 것이다. 좀 더 걸었어야 했다. 그야말로 녹초가 되어 잠이 온전히 나를 점령하게 해야 했다. 나는 끝없이 떠도는 삶이어야 하리라. 

 

어제 일기부터 앞뒤 문맥에 흐르는 융통성의 궤가 맞을까. 글은 지하로 급강하를 했다가 정상을 오르지 않은 채 급상승을 하곤 했다. 강의를 끝까지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두세 번은 들었을 강의인데도 이렇다.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순리이니 당연히 받아들이자고 제어하는데 슬픔이 왈칵 정신 바깥으로 치솟는다. 그 어떤 것에 받은 감명도 제대로 유지 되지를 못한다. 단 하루도.

 

어제와 오늘 일기는 유튜브 '일당백'의 정박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내 살과 피를 붙여 썼다. 오늘은 맞춤법도 티스토리 한 번으로 끝낸다. 한글 문서에서의 맞춤법 검토를 생략한다. 어서 자자. 어제의 마지막 언어를 오늘도 사용한다. 진정이다. 진정이어야 한다.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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