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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나는 마음에도 없고 저만 혼자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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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날, 날은 오늘을 말한다. 나는 마음에도 없고 저만 혼자 환하다. 저 혼자 쌩쌩하다. 오늘 날씨를 말한다. 오늘의 하늘을 말한다.

아하, 오늘 미세먼지는 어떻지?

 

 

봄날! 아마 3월의 출근길에서 본 동백일 것이다.

 

 

어제 오후 세 시간이 넘는 시간을 말을 해야 했다. 대면 상담, 혹은 일대일 강의, 과정 설명 및 그에 따른 충고와 조언, 이 어떤 경우에도 모두 알맞은 행위를 해냈다. 이미 정해진, 이미 확인된 내용을 확인시키면서 잘못을 꾹꾹 짚어 자기 언행을 돌아보게 하고 이윽고 반성을 하도록 이끌어가는 진행이었다. 700 밀리리터 들이 정도 될까. 머그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와 한 모금 목을 축인 후에 시작되었다. 상대를 돌려보내고 일터의 내 방 실내, 내 책상과 의자 주변을 정리하면서 남아있는 물을 보니 한 모금도 못 된다. 

 

목이 아팠다. 점심도 굶었다. 본의 아니게 종일 다이어트를 했다. 아침은 16시간 이상 간헐적 다이어트 중이다. 내 기분을 가볍게 해주는 것이 있었으니 긴 시간의 공복 상태였다. 허기진 위장 상태였다. 편히 쉬고 있을 내장들과 소화기관의 은근히, 아늑하고 고요한 맥박이 사람의 정신을 평온하게 쓰다듬었다. 푹 꺼진 복부에 의도적인 단전호흡이 내 몸뚱이 속 온갖 나쁜 균들을 산화(散花)하게 했다. 이주일, 아니 삼 주 째 다 되어가는 시간을 끙끙 앓고 있는 나의 영혼을 위하여 인간의 신체에 궂은 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들에게 스스로 사라져 주는 능동자가 되게 해 주었다. 고마운 단식. 두 끼 단식이었다. 스물여섯 시간 정도를 굶었다. 그 와중에 세 시간 여 일방통행 방식의 입놀림을 해야 했다.

 

여덟 시가 다 되어 퇴근하였다. 남자는 제주로 떠난다고 했다. 이렇게 마음 무거운 날은 차라리 나 혼자라는 것이 다행이다. 이런 날, 내 공간에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무거운 짐이다. 각자의 일터 일은 모르고 사는 생이어서 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 집 앞 농협 하나로마트를 들렀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고 나니 갑자기 식욕이 일었다. 며칠 전 먹었던 돼지고기 목살구이의 맛이 떠올랐다. 워낙 고기 굽기에 이력이 특출 난 남자가 구운 것이라서 맛있기도 했겠으나 지난 월요일과 수요일에 먹었던 것은 정말 맛있었다. 한번 먹고 나니 두 번째부터는 상추와 깻잎, 청경채의 삼단조립 위에 올라와 있는 상태의 목살만으로도 침이 좔좔좔좔 흐를 정도였다.

 

아직 두세 단계는 남은 일이지만 어쨌든 본론을 삶의 무대에 띄워 발가벗기기 시작했다. 해당이 되는 상대의 보호자를 앉혀놓고 일의 진행 과정과 결과 처리를 위한 권고의 방법까지 제시해 줬다. 정확한 확인 절차를 치른 후였으므로 이제 상대에게 제시한 일의 해결책에 대한 다짐만 받아놓으면 된다. 사람이라며, 이제 더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다. 도덕과 법으로 이미 결론내려진 일이다. 진행 과정을 문서화하고 다시 일이 발생하면 일터에서의 존재 자체가 부정된다는 서약의 내용으로 각서까지 받아놓고 보니 상대가 참 안쓰럽기도 하다. 어쩌자고 빤한 일을 겁도 없이 저질렀는지. 그토록 단계, 단계를 쌓아가면서 멈출 것을 경고하고 용서를 베풀겠다는 공식적인 언어 사용에도 불구하고 저 진저리 쳐지는 행위를 계속 해왔는지. '짐승'도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하여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관용어가 부끄럽다. 

 

일터 큰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식욕이 샘솟았다. 목살구이의 맛이 벌써 입 안, 혀의 전신이며 식도 기둥의 가냘픈 벽에서까지 감지되었다. 내장의 벽들도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아무리 빈 속의 공백이 사람의 몸을 가뿐하게 한다지만 적당량 들어차야 할 내용물이 있는데도 긴 시간을 소식 없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예민 반응을 일으키게 했을 것이다. 내장에 미안하기도 했다. 아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 몸은 '적절함'이 최우선적으로 필요 요소라는데 내가 내장에 하는 짓거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오늘처럼 기분이 나쁘면 서너 날을 물만으로도 살 수 있다. 콜콜 굶으면서 내 육신을 학대하곤 한다. 또 어떤 날, 극도로 우울한 날이면 퍼먹는다. 배가 터지게 입 속으로 구겨 넣는다. 기분 좋은 날이면 또, 기분이 좋다고 처먹는다. 이런 상스러운. 그래, 가만 돌아보면 내 육체에 내가 저지르는 짓은 상스럽다. 그것을 견뎌야 하는 내 안의 나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나는 갑질을 한 셈이다.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저지른 구태의연한, 제,멋대로였다.

 

오늘 기분대로 긴 시간 허허벌판의 쌩한 바람 속에 둔 내장에 반성을 드러내면서, 자, 나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자고 생각했다. 바삐 마트를 향해 질주했다. 보통 걸음으로 족히 삼십 분 앞뒤 일이 분의 시간이 필요할 길을 십오 분이 덜 되어 도착했다. 식자재마트의 모든 음식물들이 울긋불긋, 파릇파릇 싱그럽고 화사하였다. 알알이 입에 쏙 넣고 싶었으며 살살 살살 입 안에 넣어 혓바닥 위에서 굴리면서 맛을 음미하고 싶었다. 와사삭와사삭 좋아하는 견과류를 이빨 사이 오도독오도옥 씹고 싶었고 달착지근한 여러 음식을 입 안 가득 넣고 가닥가닥 추려가면서 식도를 통과하게 하고 싶었다. 달콤 씁쓸, 쫀득, 입 안에 넣으면 여러 혼합 맛의 종류를 내 뇌 속에 열거하는 화이트와인을 입 안에 부어 식도 아래로 흘려보내고 싶었고 한 단계 과감한 짓으로 나아가 도수 높은 소주나 양주를 한 모금 입 안에 부려서 식도를 통과하는 흔쾌함도 누려보고 싶었다. 

 

 

목살구이는 내일로 미뤘다. 굽기가 싫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목살로 한 근을 집었다. 여타 야채류나 마늘과 양파 고추 그리고 대파 등은 집에 있을 것이다. 밀가루 음식을 피해야 하는 역류성 환자이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입 안에 넣어 삼키곤 하는 빵이 있어야 하겠기에 삼립 크림빵을 한 봉지 집었다. 올 초 언제인가 몇 걸음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파리바게트의 빵과 삼립 빵 중 삼립 빵을 골라서 맛보게 된 후 줄곧 삼립 빵을 사 와서 먹는 습관이 들렸다. 맛이 참 괜찮다. 

 

빵을 먹고서도 목구멍의 묵직해지고 타는 듯한 느낌을 덜하게 하는 방법 한 가지를 체득했다. 지난해 겨울 사놓은 모과차와 함께 먹으면 된다. 빵 조각을 뜯어 입 안에 넣고 아직 씹기 전에 따뜻한 모과차 한 술을 입 안에 투여한다. 그리고 빵과 함께 씹어 삼키면 된다.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 오는 밀가루 음식 섭취 후의 곤혹감을 상당히 덜 하게 한다. 이후 주말에 마트에 가면 삼립 빵을 사 들고 오는 것을 계속하게 되었다. 

 

집에 들어오니 그러나,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시각이 짧은 것은 아홉에 가까워져 있었고 긴 것은 칠을 넘어선 상태였다. 나의 요즈음 유일한 텔레비전 정기 시청 프로그램인 jtbc의 '팬텀싱어 4'가 곧 시작될 시각이었다. 자정 가까이 되어야 끝나므로 잠들 준비를 끝낸 후에 텔레비전을 켜는 것이 마땅했다. 재빨리 샤워에 머리 감기를 하고 나온다고는 했지만 여덟 시 오십 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오늘의 목살구이 만찬을 취소하였다. 어제 쪄 둔 고구마 두 개를 차디찬 요플레를 열어 먹었다. 종일 비어있던 창자는 자꾸 '조금만 더 줘요.'를 주장하였다. 견과류를 조그마한 접시에 담아 천천히 씹어 삼켰다. 역류성은 음식물을 삼키는 것에도 '천천히'를 꼭 실천해야만 한다. 단단한 음식물이라면 필수이다. 어쩌다 액체 없이 단단한 것이나 마른, 혹은 팍팍하거나 퍽퍽한 음식물을 씹어 삼켰다가는 식도에서 멈춘 채 내려가지 않아 너무 힘들다. 사람이 살자고 먹은 음식물이 사람을 지배하여 숨이 막히게 한다. 

 

결국 팬텀싱어를 보는 즐거움으로 만찬을 대신했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나의 눈높이가 하늘을 치솟아서인지 팬텀싱어 4의 7회, 오늘은 나를 뒤흔드는 음악이 없었다. 고백하건대 사실 잠깐 졸기까지 했다. 잠시 후 노래들을 다시 들으려 한다. 잘했을 것이다. 단지 내 몸이 짊어지고 있던 긴장감이 풀어져서 내 귀가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 어젯밤에 하기로 했던 만찬은 오늘 낮, 오찬으로 치를 예정이다. 결국 사람 때문에 발생한 일이 사람을 힘들게 하더라. 이렇게 사람 힘든 날 하늘, 봄날은 저 혼자 쨍쨍하다. 얄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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