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여, 미안하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세상에나!
지난주 금요일이었을 게다.
한양에 사는 언니의 전화.
"야, 지금 못 사두면 맛있는 낙지 먹는 것이 쉽지 않아야."
"그래?"
"거, 그 언니 있잖아, 언니. 내가 회사에 내려가면 함께 움직이는 언니 말이야. 그 언니가 그러는데 내일(토요일) 다섯 시에 언니네 아파트 앞으로 오면 산 낙지 스무 마리를 9만 5천 원에 살 수 있다는데 내 것 좀 사주렴. 너도 사고."
"엥? 토요일에 나 혼자일 텐데. 가지러 갈 사람이 없어."
"아이, 그 아파트로 가서 그냥 주는 것 담아 오면 되는디 그걸 못해야~"
"그 아파트를 내가 몰라요, 몰라. 운전을 자주 안 해서 불안하기도 하고요."
"좀 해라야, 애들(요번에 한 달 간격으로 아이를 낳은 딸과 며느리) 몸보신 삼아 좀 해주고 싶다야. 가져와서 바로 급랭하면 되는디 그걸 못 해야. 너도 낙지 좋아하잖아. 너두 두 묶을 사서 너랑 니 남편 스무 마리 먹고, 애한테도 스무 마리 보내고."
내가 갔다. 저녁부터 시작해서 밤새 큰 비 내릴 것이라는 안전 문자를 핸드폰에 받아 들고 어둠을 뚫고 그 아파트로 갔다.
언니래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 언니가 언니라고 부르는 언니라서 낯도 선데 그 언니는 활짝 웃는 얼굴로 자기가 가꾸고 있는 아파트 화단도 보여주고 손수 낙지 스무 마리 세트 네 묶음을 담아줬다. 열나게 운전해 귀가해서 냉장고에 넣었다. 서울로 보낼 언니네는 스무 마리씩 두 묶음을 두꺼운 봉지에 한 번 더 담아 급랭을 시켰다.
우리 집 낚지는 그 언니가 살림에 서툰 나를 위해 다섯 마리씩 봉지에 담아줬다. 문제는 봉지가 검은 봉지였다는 것이다. 냉장고에 넣어둘 음식을 검은 봉지에 담아다는 것이 꺼림칙해 투명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살림 좀 안다는 아줌마가 왜 산 낙지를 검정 비닐에 담아줬는지 혼잣말을 내뿜으면서 실시했다. 살아 움직이는 낙지를 옮겨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낙지를 좋아하는 나는 어서 처리하고 거나하게 장대비 속 날씨의 기운이 내게 주는 감흥을 즐기면서 산 낙지 탕탕이를 해 먹을 것이라는 기대로 재빨리 해결했다. 그날 밤, 그러나 나는 낙지 머릿속 물질을 제거한 후 밀가루로 씻어서 소금기를 한 끓인 물에 낙지를 데쳐 먹고 나니 산 낙지 탕탕이가 아니었다.
오늘, 역시 나 혼자다. 나는 혼자일 때를 즐긴다. 오늘 혼자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퇴근길 마트에 들러 오늘 해먹을 '또띠야 블라블라'를 사 왔다. 냉장고 속 여러 찌그러기들을 모아 토르티야 위에 쌓아 음식을 하려는 마음으로 냉장고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 손질했다. 혹시 냉동고 속에도 뭔가 있지 않을까 싶어 문을 열었다가 나는 그만 까무러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낙지 급냉동 사건 처리 후, 즉 지난주 토요일 이후 일요일과 월요일, 화요일을 넘기고 오늘 수요일에 문을 열었던 셈인데, 아, 낙지여, 낙지여, 낙지여! 낙지여! 냉동실 문을 쫘악 여니 웬 댄스 포즈? 웬 날씬이 모드? 세상에나, 자세히 보니 딱, 딱, 딱, 딱! 규칙적인 거리로 냉동고의 문짝 서랍문에 찍힌 동그라미. 동그라미여! 조합해 보니 그대는 낙지. 낙지였다, 낙지! 낙지가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얼음 땡'을 하고 있었다. '동작 그만!' 이미 죽은 몸. 어찌 살아내려고 몸부림쳤을 포즈. 나는 기겁을 했다.
얼음 땡 낙지는 그야말로 땡땡 얼어 있었다. 단 몇 초, 문짝에 달라붙어 있는 죽은 낙지의 몸뚱이를 떼어내는데 손가락은 얼어버리는 느낌이었다. 사실은 또 한 마리가 그런 상태였다. 녀석은 비닐봉지 아래, 아래 칸에 얹혀 있었다. 내 온몸이 함께 얼어붙어버렸다. 대체 나는 뭘 한 것인가. 세상에나! 세상에나, 세상에나!
낙지여, 낙지여, 낙지여! 내 죄를 사하여 주시길. 내 어쭙잖은 살림의 백태를 용서하시기를! 나는 고등학교 때 외웠던 '주 기도문'을 내 기억의 회로 저 아래에서 꺼내와 외웠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나는 어떤 종교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블라블라블라~,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에이멘!'
내 죄 사함을 여쭙고도 내 점심 식사 메뉴에는 구운 낙지 한 마리가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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