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남의 날이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단 한 가지도 해내지 못했다. 하, 안과에는 다녀왔구나. 아, 산 낙지 스무 마리도 샀구나. 아, 낙지 두 마리를 손질해서 참기름장에 맛있게 먹었구나. ‘율마’도 순 집기를 조금 해줬구나. 가랑코에‘도 잎 정리를 해줬네. 그렇담 그다지 텅 빈 날은 또 아니구먼.
오늘은 화분에 물을 주지도 않았는데 댕강 시간이 잘려 나간 기분이다.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다. 책 한 페이지도 읽을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면서 강의 몇을 듣기는 했다. 하기야, 어느 뇌 전문 박사님 말씀으로는 유튜브 강의로 공부하는 것은, 우리가 학습하는 방법을 그 효과적인 면에서 퍼센트로 환산할 때 10% 정도의 효과밖에 볼 수 없다더군. 내가 해 본 경험으로도 그래. 유튜브를 열심히 들었는데, 별 기억나는 것이 없어. 맞아. 유튜브로 공부하는 것도 책상에 앉아서 정식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물론 이와 상관없이 나는 노동 중에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평소 애호하는 유튜브 채널을 열어 열심히 들었다.
다시 들은 것은 '에스엔에이치 민태기 소장님의 강의였다. 매번 들을 때마다 새롭다. '조선의 과학자들'에 관한 강의는 참 알차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것은 조선의 과학자들의 생에 앞서 별도의 내용이 있다. 민태기 소장님의 관찰력과 호기심과 용기, 뭔가 알아보려고 하는 의지와 그 실천력에 놀란다.
민태기 소장님이 조선의 젊은 과학자들을 탐구하게 된 것은 영화 '태극기는 휘날리며'의 첫 화면에서 시작되었단다. 그곳에서 볼 수 있었던 태극기, 세기의 철학자(정치인, 사상가?)들이 참석한 1920년 7월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서부터였다고 하셨다. ( 물론 그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많은 연구를 하셨겠지만) 참고로 코민테른 2차 대회에는 40개국 67개 조직에서 파견된 217명의 대표가 참석했다고 한다. 그 흉흉했던 조선, 40개의 참가국 속에 들어있었다니 내 생각에도 놀랍다.
민태기 선생님은 조선의 과학자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셨단다. 조국을 위해 일하시려 움직이는 과학자들이 여럿 있었단다. 그들이 곧 독립운동가였다. 몇 대째 계속된 집단 지성의 힘이기도 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정신적인 힘이자 운명이었다.
지나놓고 보니, 내 생, 민태기 소장님 같은 분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더라면, 내 배움의 세계가 좀 나아졌을까? 지적인(?) 일을 단 한 가지도 해내지 못한 오늘, 괜히 심통 좀 부려본다.
참고로 당시 코민테른 2차에는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이었다. 조선 대표 격으로 참가했다고 한다. 1919년에 김철훈이 조직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단체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공산당은 1921년 한인사회당의 이동휘가 창당한 공산주의 정당으로 출범했는데, 1922년 12월 한인 공산주의자들의 고질적인 파쟁을 수년간 지켜본 코민테른 지도부가 한인 공산당들을 모두 해산시켰다고 한다. 주워들은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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