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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단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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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술을 마시고 적당히 취하고 싶다.

 

 

비슷하리라. 단술을 담은 그릇.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너비의 풍족함을 제법 느낄 수 있는 우리 집 마당에 이른 새벽부터 덕석이 깔렸다. 상일꾼 후동 아재는 벌써 커다란 지게 위에  잔뜩 퇴비를 싣고 논으로, 밭으로 나가고 없었다. 덕석 깔기는 중일꾼과 새끼 일꾼이 함께했다. 이름도 성도 다른 둘은 이미 친형제 이상이었다. 서너 해 넘게 동거 중이었다. 마당의 시멘트 바닥을 깨끗이 쓸고는 키득키득 장난질을 해 가면서 덕석을 깔았다. 탁탁 탁탁, 깔기 전에 덕석 위에 먼지 한 톨 남아있지

않게 깨끗이 털어내는 일도 이미 했으리라. 둘은 천생연분 한 묶음인 것처럼 주어진 일을 손발을 맞춰가며 척척 해냈다. 덕석 위로는 며칠 전 우리 엄마 두 손에 의해 말끔하게 처리된 물건 한 겹도 얹어졌다.

 

"어머니, 깔았어요. 다 되았으면 가지고 나오쇼야."

"아, 으째 덕석 터는 소리가 안 들렸던 것 같다. 깨끗하게 잘 털었냐?"

"걱정마쇼야. 아까 탁탁 탁탁 야무지게 털었는데 안 들립디요?"

"하기는 어련히 알아서 잘 했겄냐마는, 다 니들 먹을 것이니께 깨끗하게 했겄지야."

"야, 걱정마쇼. 덕석 위에 삼베 깔았는디 덕석 좀 더럽다고 어쩐다요 또. 얼른 가지고 나오란께라우. 뭐하시요?"

"아니어야. 삼베 깔아도 뜨거운 것 널어야 된께 증기 깊게 머금을 삼베 아래 덕석도 깨끗해야지야."

"아따 거, 깨끗하다니까요. 얼릉 갖고 오쇼야. 배 고프구만."

"그랴. 지금 나간다야. 나가. 금방 갈거여. 받을 준비를 야무지게 하고 있거라이."

 

삼베, 우리 엄마의 삼베와 비슷하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엄마의 작업은 누룩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분명 엄마가 누룩을 만드셨던 것은 분명한데 그 구체적인 작업 과정은 제대로 떠오르질 않는다. 과정을 자세하게 적기가 어렵다. 이런. 더 찾아보고 더 알아봐야겠다. 언니들에게 물어보면 알까. 어쨌든 누룩은 며칠 전에 만들었던 듯싶다. 재료 등 구체적인 것은 다음에 조사하여 다시  써보기로 하고. 미리 만든 누룩을 대행사일 전야에 잘게 빻아서 곱게 모닥거린 후 물에 불렸던 것은 기억이 난다. 

 

일단 대행사를 치르기 하루 전날 밤에 물에 불려둔 누룩을 엄마는 그날 아침 체에 밭쳐 찌꺼기를 제거하셨다. 누룩물(이를 어려운 말로 수곡(水麯)이라고 한다는 것을 우리 아버지는 또 내 동생과 나를 앉혀두고 교육시키셨다. 나는 가끔 이 한자어를 붓펜으로 쓰면서 글자 형태의 미학을 몸소 체험하곤 한다.)을 시룻물과 함께 커다란 독에 담아 앉쳤다. 아, 그런 다음 우리 집 마당에서 펼쳐지는 일은 장관이었다. 

 

 

엄마와, 내 손위 언니와, 언니와 같은 나이의 일 도와주는 언니가 낑낑거리면서 마당으로 나왔다. 셋은, 커다란, 짙은 밤색과 갈색의 중간 지점에 있는 색을 지닌 고무 다라이를 들고나왔다. 마음 넉넉한 우리 집 중간 일꾼 아저씨가 엄마 쪽으로 달려가 다라이를 내려받았다. 꼬마 일꾼은 두 언니들 중 누구의 다라이를 또 넙죽 받아 들었던가. 다라이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하늘을 향해서 솟아올랐다. 

 

마당 가득, '무럭무럭'에서 '모락모락'으로 잦아들었지만 여전히 큰 기운의 김을 내뿜고 있는 것은 희디흰 찹쌀밥이었다. 고들고들 고두밥이었다. 물기를 찾을 수 없었다. 고두밥을 짓는 방법에도 역사가 있었다. 찹쌀을 물에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린다. 이를 건져서 물기를 뺀 후 가마솥 시루에 찐다. 가마솥의 크기가 엄청났다. 엄마는 김이 한창 오르면 그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덥석 붙잡아 열었다. 어디서 그 힘이 솟아나왔을까. 그 작고 여린 몸에서. 엄마는 재빨리 찬물을 뿌려가면서 한 번 더 익히셨다.

 

마당에는 온 식구가 나와 있었다. 찹쌀 고두밥을 덕석 위 삼베에 펼치기 위해서다. 엄마가 우리 쪽을 보고 외치셨다.

"아, 징하게 뜨겁다야. 손 조심해라, 손 조심. 쪼끔 있다가 해라이."

너무 뜨거우니 나와 동생에게는 만지지 말라고 소리 지르시는 엄마의 목소리와 우리는 엇박자로 움직였다.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나와 동생은 그 뜨거운 찹쌀 고두밥을, 솔솔, 솔솔, 솔솔, 따뜻한 김을 마구 내뿜고 있는 것을 삼베 위에 펼쳐 널기보다는 입안에 집어넣느라 바빴다. 비단 나와 동생뿐만이 아니었다. 엄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한 손은 호호 호호 불면서 뜨거운 기운을 식혀 찹쌀 고두밥을 펴서 말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입 안에 넣느라 바빴다. 그 맛을 어떤 낱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뜨거운 고두밥 한 덩이를 두 손안에 담아 오른손 손바닥과 왼손 손바닥으로 번갈아 이동시켜서 식혀내던 그 기분. 입 안에는 건강한 이빨과 혓바닥, 가득 고인 침이 곧 입력될 찹쌀 고두밥을 잘게 부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찹쌀 고두밥이 한 김 나가게 식혔다고 여겨지면 다음 작업이 이어졌다. 고두밥이 아직 더울 때였다. 어떤 최첨단의 도구로도 통제할 수 없는 우리 엄마만의 감이 작동했다. 고두밥의 더운 기운, 그 적당함이 우리 엄마의 손안에서 읽어지면 재빨리 발효가 끝난 밑술과 섞어 이를 버무렸다. 이것은 빚어 안친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아 술로 탄생했다.

"잘 되얐네, 잘 되얐어. 낼이나 모레 한 번 더 봐야겄지만 징허게 잘 되야부렀다야. 성공이다야."

우리 엄마가 외치는 감탄의 문장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이것은 나와 동생에 의해 '단술'로 이름이 붙여졌다. 주류업계에서는 이를 전문 용어로 '감주'라 부른다고 했다.

 

아, 단술 맛은 꿀맛이었다. 벌꿀? 저리 가거라. 순수 일백 퍼센트의 벌집꿀의 단맛 그 이상이었다. 거짓말을 보태서 우리 엄마를 뺀, 이 행사에 동원된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단술을 한 바가지 씩은 마셨다. 그러고도 많은 양이 남아 논일을 끝내고 바삐 돌아오신, 한 덩치 하신 우리 집 상일꾼 후동 아재는 서너 바가지를 마셨다. 그는 덕석 위에 누워 오후 내내 노래를 불렀다. 무슨 노래였던가. 한데, 이상하게, 그토록 술 좋아하신 우리 아부지는 이날만큼은 적당히 드셨다. 

 

 '덧술'이니 '단술'이니 각자 자기 말이 맞다고 응글응글, 소리질러가며 가짜로 싸우다가 우리 모두는 덕석 위에 누워 달이 떠오를 때까지 잠들어 있었다.남은 술은 우리 엄마의 언어로 '깨깟이' 닦은 술독에 담아 앉쳐졌다. 진짜 '감주'는 그날 이후 이삼일을 두고 발효시킨 후에야 완성되었다. 이 술은 우리 집을 대표하는 맛있는 노동주로 탄생하였다.

 

내가 이 나이에도, 소화불량증은 안고 사는 이 늙은 몸뚱이로도, 고두밥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다. 아마 이 행사에 연유한 것이리라. 누룩물의 농도, 찹쌀 고두밥의 상태, 밑술의 양, 찹쌀 고두밥을 발효가 끝난 밑술에 섞을 수 있는 더운 정도 등을 뜻하는 낱말이 있다. 이는 다음에 '내 어머니의 언어'로 펼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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