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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어제 점심을 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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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점심을 굶었다.

 

어제 점심 메뉴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어제, 프로젝트를 끝냈다고 여겼던 어제. 오전은 참 마음이 편했다. 이 일이 시작되면서 지녔던 마음 부담이 의외로 컸기에 한없이 구렁텅이로 밀려가는 듯싶던 몸이 참 가벼웠다. 이렇게 재빨리 끝을 맺다니. 참 오랜만에 품게 된 큰 만족도까지. 앞으로 한참 제법 편안한 낮과 밤이 예약된 듯. 누리자, 맘껏 자유를 누리자고 다짐했는데 자유와 평화로 찬란하게 버물어진 것 같은 지속성의 유지 시간은 너무 짧았다. 말끔하고 가뿐한 몸은 어제 오전 서너 시간으로 그쳤다.

 

일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곳에서 터졌다. 새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라고 해서 새롭고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에는 대당초 해내던 기본은 예외 없이 진행되면서 새 일이 덧붙여진다. 으레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내용이 있다. 기본을 빠뜨리고 말았다. 다시 내게 돌아온 문서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나의 기록이 미비한 상태였다. 순간 황당했다. 내게 문서를 건네주는 이의 언어나 눈빛은 평소 그대로인데 나는 지레 미안하고 죄송해서 두 눈을 내리깔았다. 차마 당당하게 쳐다볼 수가 없었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새 프로젝트에 구멍이 있었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나름 일터에서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철저함을 추구한다고 다짐하는데 그만 놓쳤다. 와르르 무너졌다. 와장창창, 나의 생을 감싸고 있는 유리가 깨어지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디지털 환경이었다. 새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기존의 것들도 뭔가 문제가 생겼음이 분명했다. 올바른 방법이라는 생각으로 새롭게 고쳐서 재삽입을 하는데도 먹히지 않았다. 손을 봐야 할 부분은 미미한데 과정은 거창해야 했다. 대여섯 번을 이 방법으로, 저 방법 등등으로 다시 또 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너무 지쳐서 내팽개치고 퇴근을 하자, 디지털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청하자, 내 옆 방 젊은 친구라면 두 번 읽어보지도 않고서 바로 해결할 텐데 내 나이가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마지막, 한 번만 새 방법으로 시도해 보자 했더니 제대로 고쳐졌다. 아니, 온전한 틀로 입력이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문제는 내가 했던 일이 어떤 방법이었는지, 올바른 결과를 끌어낸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떤 상태의 틀로, 어떤 내용을 넣어서 해결되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런, 이런. 나는 이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오늘처럼 여러 번의 시도를 해야겠다고 깨닫는 순간 나를 쥐어패고 싶었다. 질타한다고, 야단을 퍼붓는다고 생각이 다시 떠오른다면 얼마나 좋으랴. 방금, 정말로 조금 전에 했던 나의 행위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를 않는다니, 이것이 무슨 일인가.

 

유독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민감해진 것이 서너 해가 되어간다. 아니 오륙 년은 되어간 듯싶다. 자꾸 겁이 나고 엉겹결에 당연한 것이 두렵다. 젊은이들에게 양해를 먼저 구했어야 했나 싶고 총총한 뇌세포의 기운을 먼저 빌어온 다음에 내가 생각한 방법을 더해서 시행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진다. 두려움만 커지고 머뭇거림의 강도만 진해진다. 거기에다가 쉽게 포기가 되지 않는다. 기어코, 당당하게 나설 수 있도록 매끈하게 해내고야 말겠다는 다짐만 커진다. 그리고는 또 엉터리 진행이 되곤 하여 돌아서서 후회한다. 내가 괜히 나섰구나. 내게 주어진 일일지언정 젊음에게 하게 할 것을. 삶이 참 좀스러워졌다. 이를 어찌 해석해야 하고 이 상황을 어떻게 얼버무려야 하고 나를 대체 어떻게 토닥거려야 하며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나 가능할 수 있을까. 

 

오늘은 평화로운 가운데 숙면을 취하고 싶다.

 

 

그제 밤은 평화스러울 내일이 기대되어 잠을 설쳤다. 어젯밤은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구체적인 사람이 없는데도 미리 누구에겐가 죄송해서 잠을 잘라먹었다. 오늘 밤은 두 날 나 스스로에게 벌한 죄를 다독거린다는 보상으로 잠을 좀 잤으면 좋겠다. 보던 영화라도 마저 본 후에 자면 차라리 더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까. 어제, 죄스러운 마음에 굶은 점심으로 저녁은 또 야무지게 먹었는데도 잠이 짧았다. 오늘은 어서 자자. 일단 또 해결은 되었으니까. 빛바랜 나의 찬란함이여. 찬란함은 늘 잠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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