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란비 잠시 그쳤다는 예보다.
오란비.
가끔, 어쩌다가 한 번씩 사람에게 끌리면 나는 상대방의 입장이나 생각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사람을 내 멋대로 지명하여 내 인간관계 조직도에 편입시킨다. 이곳 블로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내가 점 찍은 나의 절대적인 친구 한 분이 계신다. 계신다? 그분의 글 속에서 내 나름대로 판단한 그분의 연령대에 의존하여 그분은 분명 나의 인생 선배이시다. 그분이 쓰신 글만으로도 충분한 판단이 가능하다. 물리적인 숫자를 알 수 있는 연령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글에 묻어나는 문장의 수준만으로도 그분은 분명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연륜을 지니고 계신다.
오늘 이 낱말을 만나려고 내가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했을 거다. 오늘 오전에 평일 오전 시간에 블로그를 열고 내 글에 댓글을 주신 분들의 블로그를 의무적으로 방문한 것이다. 나의 일터는 업무 처리 중 굳이 업무를 알차게 처리하는 데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남은 시간을 얼마든지 어떤 블로그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다. 심지어 어떤 전문 분야의 새로운 정보를 취해서 업무 처리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평소 내가 방문한 적이 있는 그 분야 블로그를 방문해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오란비. 몇 분 생각 끝에 이 낱말을 자기 글에 올리신 그분의 블로그 방 이름은 썼다고 지웠다. 이런저런 생각이 작동했다.
제목으로 사용된 이 낱말 ‘오란비’는 아름다우면서도 처연한 그분의 글 속에도 있다. 이 낱말이 내 눈에 읽힌 순간, 우선 참 마음이 따뜻해졌다. 내 어머니의 배 속에 내가 처음 잉태된 날, 마치 내 어머니가 이 세상 최고로 고운 낱말이라고 나의 뇌세포에 곧게 심어준 듯 그렇게 여겨지는, 내가 학습하게 된 어휘 역사의 첫 글자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너무 오랜 기간 내게 머물렀기에, 너무 이무러워지고 이무러워짐이 무게가 느껴져서 꽤 긴 시간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중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내 세상살이가 너무 복잡해져서 내쳐뒀다가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그렇게, 나의 마음에 따뜻하게 다가왔다.
정말로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오란비. 오란비는 ‘장마’의 옛말이다. 현재를 사는 한국인들의 얼마나 이 낱말을 알고 있을까. 아주 오랜 옛날 이 낱말을 사전으로 찾아 헤매던 때가 생각난다. 내 어머니는 혹 이 낱말을 알고 계셨을까 궁금했던 때가 떠오른다. 길든지 짧든지, 깊든지 얕든지, 어쨌든, 문학에 뜻을 두고 살았던 나는 새로운 낱말을 만나면 들떠 어쩔 줄 모른 채 흥분하면서 국어사전을 들고 나대곤 했다. 좀 차분했다면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무게도 부피도 너무 가볍고 얇아서 어디 내밀 것이 못 되어 매우 슬픈 일이 되었다. 오란비는 깊이 있는 글을 쓰시는 블로거 ‘마음의 행로’ 님의 글로 만나니 내 현실을 더욱 확실하게 느끼게 했다.
오란비는 아마 ‘오란’과 ‘비’의 합성어이지 않을까. ‘오란’은 현대어 ‘오랜’의 고형이지 않을까. '오란'과 '오랜'의 전체적인 글자 형태를 포함한 글자 모양과 소리를 내어 읽었을 때의 어감을 떠올려 보자. 당신은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가. 나는 '오란'이다. 일단 열려 있다. 입을 크게 벌려 오래, 긴 시간이 지닌 지루함과 지난함과 고루함을 무디게 한다. '길다'라는 뜻이, 내가 원하는, 우선이라도 멈춰줄 것을 요구하는 가벼운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불량스러움을 '오랜'은 더 강력하게 지니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하여 단순하게 혹은 세세하게 '오란'과 '오랜'을 파헤쳐보거늘 '오란'이 훨씬 유하다. 물론 지극히 나의 주관이다.
오늘 새삼스럽게 찾아 나선 <표준국어대사전> 속 ‘오란비’를 찾을 수 있는 출처는 다음 문구였다. ‘天涯歇滯雨, 粳稻臥不飜’. 해석은 ‘하 오란비 헐(歇)니 볘 므레 누워 두의티디 몯얫도다.’번역 하늘 가에 {장마} 그치니 벼가 물에 누워 번드치지 못하였도다. 헐(歇)은 휴식하다, 다하다, 비다, 마르다 라는 뜻이다. 곧 헐(歇)은 ‘그치다’라는 뜻이다. 낯선 한자어이다. 하기는 우리 일상에서 그리 멀리 있는 글자도 아니다. 내가 지금 시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의 간헐적(間歇的)에 사용되는 한자어이다. 참 출처 <<두시-초 16:4>>. ‘두시’는 ‘두시언해’를 말하는 것일까. 더 현대적인 문구로 해석해 본다. ‘장마 그치고 나니 벼(나락)가 물에 누워 있구나.’ 의역에 가까운 해석이라고 하자.
출처 하나 더. ‘霖 오란비 림’이라는 한자어가 있단다. 출처는 <<훈몽 상:1>>이다. ‘훈몽’은 뭘까? 훈몽자회? ‘霖 오란비 림’은 ‘霖 장마 림’으로도 적는다. 낯선 한자어까지 예술적 디자인으로 읽힌다.
재미있는 공부다. 좋아하는 블로거 '마음의 행로' 님(결국 발설하고 만다.) 덕분에 오늘 내 언어의 고향에 들러 따뜻한 물 한 모금 정갈하게 마신 기분이다. 날도 참 괜찮았다. 습한 기운이 뚝 떨어지니 한여름 바람이 이쁘기까지 한다. 곱상하게 나를 감싸는 덕분에 피붓결이 산뜻해진 기분이다. 화사한 플라워 원피스라도 있었으면 곱게 차려입고 늙은 공주님 흉내라도 내면서 ‘고슬고슬’에 제법 가까운 바람 속을 걷고 싶다만. 불행히도 내가 지닌 원피스들은 대부분 블랙이다.
퇴근하여 비교적 짧은 시간의 영화 ‘기간제 교사’라는 영화를 보고 있다. 요즘 시국에 참 인상 깊게 다가온다. 내 짧은 생각으로도 우리나라는 교육제도를 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당이 요즈음 말하는 그런 방향의 개혁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 다른 정당의 내용도 더욱 아니다.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교육 개혁 방법에 대한 나의 주장도 어설프게나마 펼쳐보고 싶다. 너무 짧은 생을 살다 가신 분에게 나이가 든 사람으로서 참 미안하고 죄스럽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온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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