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12월의 값을 하는구나.
어제, 22년 11월의 마지막 날에 시작된 강추위가 오늘 12월 1일로 이어지고 있다. 체감 온도라는 낱말이 있다. 그 넓고 깊은 뜻에 의하면 한겨울에 어제와 오늘 기온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최고온도 20에 가까이 있다가 갑자기 단위 1의 라인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몸의 느낌은 굉장히 달랐다. 어제 말이다. 무지막지하게 춥게 느껴졌다, 체감. 이 낱말에 도전하고자 분투하는 모양새로 레벨 2의 코트를 착용하고 집을 나왔다(나는 내가 지닌 겨울용 코트를 5단계로 나누어 착용하고 있다). 일터에서 만난 동료 한 분이 내 옷차림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안 추우세요?"
"견딜만한데요."
진짜로 그랬다.
견딜만했다. 빠른 속도로 걸으니 열기 비슷한 것도 폴폴 솟아났다. 추위라는 것을 떠올릴 새도 없이 일터를 향해 걸었다. 몇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니 한 명도 빠짐없이 패딩 롱코트이다. 내 여린 몸이 두드러졌다. '1대 다'이다. 모두 두툼하여 통통통통, 너비가 굵은 통돌이들이 거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한데 통글통글 굴러간다는 생각에 마스크 속 내 입술 밖으로 반짝 웃음이 흘렀다. 나는 그만 날씬한 몸매를 훨씬 더 생생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이 겨울 아침의 날씬함이란 사실 '빈곤'이었다. 차라리 '초췌하다'에 오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온전한 날씬함이 아니어서(?) 몸매가 설할 수 있는 몸의 철학은 부르짖을 수 없었다. 그저 밋밋한 가는 몸이었다는 것이다. 슉슉슉슉, 토실토실 풍성한 사람들 곁은 자고로 함께하지 않은 것이 내게는 유리하다 싶어서 딱 경보 수준으로 달렸다. 금세 일터였다.
평소 출근 시간의 3분의 2쯤 되었는데 도착했다. 새벽에 열렸던 아르헨티나와 폴란드의 축구 하이라이트부터 열었다. 오, 메시. 나의 사랑 메시. 아르헨티나가 두 골을 넣었구나. 16강에 올랐구나. 고맙네. 며칠 내가 살아낼 힘이 되겠느니. 메시는 첫 골 사냥부터 실패했다. 경기 끝 무렵 예전 같으면 충분히 넣을 수 있는 골도 죽어라고 잘 달렸으나 골문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여섯 개의 슈팅을 단 한 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70%를 넘는 아르헨티나의 볼 점유율에서 그 3분의 2인 반인 46% 이상이 메시일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힘이었다. 사람은 세월가면 나이 먹고 늙는 것이 당연한 것. 괜찮다, 리오넬 메시. 당신은 당신 그 자체, 그 존재만으로도 대단하다.
아침 출근 준비 시간이 길어졌다. 일곱 시 이전에 집을 나서는 것과는 영 거리가 멀어졌다. 여러 겹의 옷을 입어야 한다. 겨울옷은 모두 길다. 내 옷은 사시사철 모두 길쭉길쭉하지만 겨울 긴 자락은 내 몸에는 드세다. 두꺼운 천 더미를 온몸에 뒤집어쓰고 올리고 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별게 다 힘들다고 하겠지만 집 안에 책과 화분을 쌓아두는 것 말고는 모두 미니멀로 사는 나는, 4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여서 옷도 무겁다. 내 몸보다 더 무거운 옷의 무게이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아침, 옷을 입을 때마다 생각된다.
옷의 무게가 나를 짓누른다. 이게 뭐람. 과학이 발전했다고 히트텍 등 따뜻한 옷들이 있어 그나마 한두 단계는 생략할 수 있다. 천도 무겁다.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 힘들다. 며칠 전부터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귀찮아졌다. 무슨? 여러 겹의 옷이 무겁고 귀찮다. 화장실을 가면 여름에 비해 화장실에 체류하는 시간이 배로 는다. 이래저래 복잡해진 절차가 싫다.
복잡한 일상이 어제오늘, 12월이 되면서 굳어졌다. 12월이 12월 값을 한다 싶다. 기상예보로 온 세상이 겨울로 확 돌아섰다. 옷집, 술집, 과일집 등 물건을 파는 곳곳이 온통 겨울을 진열해놓았다. 덩치 나가는 옷들로 온몸을 감싼 사람들이 겨울을 이길 수 있는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모든 추위를 바깥에 두고 어서 들어가자. 들어간 간 집에서 온기를 붙들어 안고 마구마구, 데굴데굴 거실 바닥을 뒹굴자. 바삐 바삐 굴뚝이 있는 곳으로 스며든다.
12월. 어서 마침표를 찍으라고 조른다면 기꺼이 쩍 하고 도장을 찍겠지만 아직은 더 여물 수 있는 무엇을 기다려본다.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닦을 준비를 하겠노라고 조용히 속삭여본다. 막 시작된 12월 1일을 발 뒤꿈치에 매달아 집으로, 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벌써 새해를 구상한다. 입대 1년이 되면 좀 더 남쪽으로 내려올 수 있는 내 사랑도 기다려진다. 자, 어서 왔구나. 12월이여. 남은 한 달은, 정말, 뒤돌아보면 가장 적은 후회를 하는 달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한다. 부지런히 살 거야. 무거운 옷 끙끙 들쳐 메고 뒤뚱뒤뚱거리면서도 열심히 살아낼 것이다.
밤이 깊어간다. 겨울밤은 고요하다는 것을 더했기에 조물주의 신중한 선물이 된다. 조심스레 밤의 선물을 받아 든다. 숙면이 가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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