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 뒤웅박 뒤집으면서 철학을 사는 것이다.
아침 일기를 쓸 수 없었다. 바빴다. 왜, 늘, 이렇게 바쁠까? 출근을 위한 출발 시각을 좀 더 앞당겨야지 싶다. 기상 알람에 눈을 뜬 후 이불속에 몸을 누인 채 두 손과 두 눈을 꼼지락거리기 운동을 생략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 고작해야 핸드폰을 보고 잡 소식들을 읽는 것이다. 제발 좀 그 습관을 없애야 하는데 왜 이렇게 버리질 못하는 것인가. 내 생이 간절하지 않든지 내 생이 구차스럽던지 내 생이 어수선한 틀 안에 놓여있던지. 이런 식의 내 생을 꾸리는 내가 참 바보 같다. 버리자 좀, 제발. 알람에 눈을 뜨면 바로 일어나기! 꼭꼭 꼭 지키기. 제발!
이벤트성 행사가 있는 날이었다. 그저 그런 내용이었지만 참가자들의 나이 풋풋하여 모든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였다.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모습들이 참 좋았다. 즐겼다. 흔히 나이 든 사람들의 연륜이 지닌 고고함을 설하는데 아니더라. 그에 못지않게 낮은 연령대의 용기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확인하였다. 거짓 없이 바로보기가 가능한 시기이다. 길고 짧고, 굵고 가늘고를 재지 않고 덤벼든다. 무작정 모험인데도 마냥 즐겁다. 뜻밖의 상황을 만나 곧장 해결책을 찾아내면서 삶의 진실을 쌓아간다. 진실은 결코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참이다. 참 그대로 생명력이다. 참 그대로 거짓이 존중하지 않을 수 없는 진의이자 진리이다. 나 어린 이들이 힘차게, 씩씩하게 나아가는 것을 모름지기 북돋을 일이다. 오늘 행사가 제법 성황리에 끝날 수 있었던 이유이다.
즐겁게 노니는 상황을 감독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직접 뛰고 말 일이다. 뛰는 상황 속에서 함께 노닐고 말 일이다. 어떤 상황을 살피는 일 또한 책임이다. 책임을 동반한 일이며 큰 짐이다. 어깨도 무거워지고 팔다리를 온전히 간수하기도 쉽지 않았다. 육신 곳곳에 여러 종의 피뢰침을 세워야 했다. 수시 노려보고 살펴보고 부드러운 속눈썹을 휘날려야 했다. 또한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결코 부담이어서는 안 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물을 거짓말 보태서 한 솥은 들이마셨다. 마시고 또 마시면서 힘을 쏟았다. 나 어린 사람들의 뜀박질을 함께 뛰어야 하는 자리가 쉽지 않았다. 부지런히 뛰었는데 헐고 너절해진 숨쉬기가 까탈을 부렸다. 반사작용에 철저한 두 발은 부지런히 땅을 밟고 바로 세워 공중으로 두 발이 번갈아 가면서 잘 해냈다. 녹슨 호흡은 이를 따르지를 못했다. 감각신경을 제대로 운행하지 못하는 숨돌림은 수시 목을 축여야만 정상 운행이 가능했다. 나이 들었다 싶으면 목부터 챙기라는 말은 꼭 실행에 옮겨야 할 정답이다. 최근 들어 자주 깨닫는다.
진정 초고령, 고령화의 시대가 도래하면 어쩌나 싶어졌다. 육십 청춘인 시대가 다가왔다고들 한다. 실제 주변인들을 보고 확실하게 느끼기도 한다. 정상적인 상태의 육십 청춘은 아니 되더라. 한 시대 안에서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주변인으로는 살아야 정상이다. 사람들 육십 환갑은 정답이다. 제아무리 최첨단의 시대를 살아도 현실 육십에서 맞는 젊음은 참 어설프더라. 현실이라는 무대에서 방기 된 채 살아낸다는 것에 힘들어하더라. 생은 참 비정하더라.
어쨌든 금요일 밤. 누우면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초롱초롱 밝은 달 뜨는 동공이 될지언정 지금쯤의 금요일이면 꼭 잠이 쏟아진다. 어찌 순간 포착을 잘하면 제법 잠들 수도 있다. 금요일은 특히 아침 일기로 제대로 써야 하는 이유이다. 오늘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런 날은 꼭 이즈음 더더욱 심하게 잠이 쏟아진다. 지금 그렇다.
인간사 뒤웅박 뒤집으면서 철학을 사는 것이다. 속을 파내기 위해 만든 구멍이 하늘로 향해도 땅으로 향해도 들어가고 쏟아지는 것은 운발이다. 운발이다? 아니다. 결코 운발이 아니다. 철학이 뒤집힌 뒤웅박으로 살아봐도 괜찮다고 자꾸 사람을 꼬드긴 것에 연유한다. 본래 뒤웅박이란 늦가을 타지 않은 박의 꼭지 부근에 오므린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어 속을 파내고 말린 것이다. 그 안에 다음 해 올진 일년살이를 위한 각종 씨앗 등을 넣어둔다. 가끔 뒤웅박 뒤집혀 안에 감긴 것들이 쏟아지기도 한다. 얼른 쏟아지는 것들 받아내어 다시 일 년을 다잡아야 한다. 삶은 그렇게 진행된다. 오늘 아침 일기를 쓰지 못해 쏟아지는 잠을 잡지 못하지만 다음 주 금요일에는 꼭 아침 일기를 오달지게 써 둘 것이라는 다짐으로 철학을 살게 되고 또 하나의 철학을 샀다.
온몸이 완전히 풀렸다. 어서 잠자리에 눕고 싶다. 앞뒤 문맥의 흐름도 전혀 살피지 않고 일기를 마구 썼다. 다시 읽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얼마나 추레할까 싶어서이다. 어서 눕고만 싶다. 4일 한 주일을 잘 살았다. 다음 주도 4일 한 주일이다. 연휴, 줄기차게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읽고 일기를 쓸 참이다. 세종대왕 님께 절 백배 못지않은 감사의 염은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표할 참이다. 허술하지 않게 3박 4일을 살 참이다. 은근히, 사는 것이 참 재미있다. 오늘 하루를 돌아봐도 말이다. 피곤할지언정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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