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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몸은 진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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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참 진심이구나.

 

 

오늘은 미처 사진을 찍지 못했다. 어제 아침 하늘을 한 컷 데려왔다.

 

 

어제, 그제와 그끄제까지 실내 운동을 하지 못했다. 특히 어제와 그제는 전혀 하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피곤했다. 저녁을 마구 먹었다. 운동을 할 시간이 마련되지 않았다. 덕분에 잠은 제법 잤다. 사흘, 대여섯 시간씩 잤다. 꿀잠을 잔 셈이다. 그것도 통잠이었다. 어쩌면 통잠 덕분에 오후만 되면 휘청거리던 정신이며 흐느적거리는 몸뚱이가 견뎌냈을 것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몸무게를 쟀다. 평소 저녁 시간의 몸무게보다 800g이 더 많았다. 요즘 너무 먹었으니 당연한 것이라 여겼다. 먹는 것을 줄이자 정도의 단순한 생각으로 끝났다. 운동을 좀 하려니 했으나 어제 아침 일기를 쓰지 못했다. 밤이 되어서야 하루 할 일을 정리하고 일기를 쓰려니 잠이 쏟아졌다. 일기를 쓰고 다시 읽어보기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었다. 꿀잠이었다. 4일 한 주일이었는데도 왜 그리고 피곤했는지 모르겠다. 실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몸무게를 쟀다. 최근 들어 처음 보는 몸무게였다. 일의 자리 숫자가 하나 더 더해져 있었다. 소수점 아래 한 자리의 숫자 바뀜이래야 정상인데 말이다.

 

오늘은 먹는 것도 좀 줄이자고 다짐하였다. 다짐은 나 혼자 먹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또 한 사람이 점심을 민어매운탕으로 마련하였다. 단감도 한 바랑 사와 열심히 깎았다. 나는 요플레를 만들었다. 오쿠로 만들지만 어쨌든 내가 시작하고 내가 통에 넣고 그릇을 닦아 챙겼으니 내가 했다고 치자. 어쩌자고 벌써 남이 해준 음식이래야 맛이 있는 것인가. 민어 살이 푸짐했다. 내가 부추 잘라 다듬는 동안 지긋하게 민어탕을 지졌나 보다. 오글오글 끓는 민어탕은 추릴 뼈도 없이 살 따로 뼈 따로 먹기 좋게 정리돼 있었다. 일일 이식이라는 핑계로 참 열심히 먹었다. 배가 남산만 하다.

 

어젯밤 퇴근길에 만난 달

 

먹고 나서야 아침에 잰 몸무게의 숫자가 떠올랐다. 아차 싶었다. 때는 늦었으니 부지런히 운동을 해야지 했으나 베란다가 자꾸 나를  끌어당겼다. 그림 그리기를 멈췄다. 서너 번째는 되는가 싶은 히스 레저 그리기도 잘 안 되었다. 보고 또 보고를 수없이 했으나 히스 레저의 그 슬픈 눈이 아니다. 어느 개그맨을 닮았다. 때맞춰 황농문 교수의 '몰입'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책도 읽었건만 별 기억이 없다. 제목에 혹해 샀던 책이었는데 그다지 나를 끌어당기지는 못했던 듯싶다. 지금이라도 몰입을 하자 하고 열심히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또 그렸으나 되지 않았다. 마음이 먼저 그림에서 떠났고 몸도 베란다로 이동하였다. 

 

어제 아침 내 블랙 커피. 커피는 간헐적 단식 중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야 할 시간에 마시는데 규칙 위반이 아닐까. 참 꿀 혹은 시럽이 더해지기도 한다.

 

 

시작은 서너 해가 되었고 본격적인 진행은 서너 주가 되었을까. 베란다 정리를 하고 있다. 꽃 식물들을 되도록이면 제거하거나 작은 화분으로 옮기고 한  곳에 몰아서 키우기를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나온 화분들에는 꼬마 율마들을 옮겨심은 것이 지난 주였던가. 녀석들이 아홉이던가, 열이던가. 꼬무락꼬무락, 마침내 뿌리를 내렸는지 선한 연두로 자라던 모습이 얼마나 이뻤는지. 이제 본 화분, 진짜 자기 집을 찾았으니 씩씩하게 자라겠지. 응달에서 새 집에 적응하기도 끝났다. 내일이면 어른이 되기 위해 자랄 곳, 본 무대로 이동한다.

 

오후 두 시 정도에 시작하여 여섯 시까지 네 시간을 베란다에서 보냈다. 농사꾼 부모를 둔 때문인지 나는 화분 흙 정리도 맨손으로 한다. 오늘은 꽤 긴 시간을 흙 속에 손을 넣어두었다. 지금도 흙 냄새가 손에 머물러 있다. 파르스름한 것도 같고 푸르스름한 것도 같다. 기분이 꽤 괜찮다. 베란다 공간이 비워져 간다. 마음 한 쪽에 화폭이 생긴 듯싶다. 베란다에서 총총 바쁜 발걸음과 손놀림으로 살던 날들이 떠올랐다. 괜한 것이지는 않았겠지만 어쩌자고 열심히 화분들을 들여 공간도 힘들고 나도 힘들게 살았을까. 어쨌든 반 나절 일종의 노동을 했다.

 

오늘 저녁 식사 후 마지막 코스로 먹은 요플레와 견과류. 한 끼 식사로도 족할 듯싶다.

 

 

노동은 음식을 찾는 것이 진리이다. 또 한 사람은 골프장으로 떠났고 나는 불후의 명곡을 들으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민어 매운탕을 데워 밥을 말아먹었다. 지리탕이라서 밥 말아서 먹기가 쉬웠다. 대여섯 조각, 감도 정신없이 먹었다. 점심 후 먹으면서 감에 아직 덜 된 것을 사 왔다고 투정을 부렸는데 저녁 식사 후 먹는 감은 점심 후 투정이 민망할 정도로 달달하다. 이어 견과류 온갖 것을 가득 담고 꿀 몇 스푼을 더한 요플레까지 열심히 먹었다. 노동의 대가로 내 몸에 수여한 상이었다. 

 

참 이상한 인간이다. 먹지를 말든지, 몸무게를 재지 말던지, 운동을 하던지 가닥을 치면서 살아야 될 텐데 늘 아니다. 저녁 식사까지 마친 후 잰 몸무게는 그 숫자가 무섭게 올라가 있었다. 아침에 쟀던 것에 또 더하기가 되어 있었다. 일의 자리가 하나 더해져 있었다. 식사 후 운동을 해야 했는데 히스 레저가 나를 불렀다. 내가 필요하다고 했다. 안쓰러운 사람. 왜 그렇게도 빨리 갔을까. 나는 그를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부터 사랑했다. 대학 스탠드에서 춤추던 모습이 선명하다. 바보. 좀 더 살지. 

 

이제부터 영화를 보면서 실내 운동을 하러 간다. 바로 옆 거실에서 말이다. 내일은 히스 레저를 완성하고 손님 치레를 해야 할 것 같다. 병어조림을 할까 싶다. 적어도 오늘 밤 실내 운동으로 어젯밤 몸무게로는 복귀하고자 한다. 이 세상에 가장 진심인 것은 몸인 듯싶다. 잉태되고, 살고, 또 살고 그리고 가는 몸. 며칠 실내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숫자로 정확히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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