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 그리고 킬리안 음바페. 둘이서 춘 더블 댄싱 무대는 황홀했다.
자려고 했다. 내 좁은 심사로는 2시간여 혹은 그 이상 걸리는 월드컵 결승전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내게 지닌 징크스가 걸리기도 했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괜찮더라는 것이다. 수면 시작 시각은 자정을 넘긴 후였다. 경기 시작 시각이 이미 지난 때였다.
'그래, 잘하겠지, 메시!'
잠이 오질 않았다. 텔레비전을 켰다. 전반전이 반을 지난 시각이었다. 1대 0으로 아르헨티나가 앞서 있었다. 앞서가는 팀이 항상 불안하더라. 1점은 점수도 아니다. 2, 3점은 넣어야 된다, 메시. 메시를 조종했다. 껐다가 다시 켜니 2대 0. 됐다 싶었다. 팀 전제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르헨티나였다.
음바페도 아르헨티나의 수비에 옴싹달싹 못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음바페는 팀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있음이 역력했다. 음바페만 보이고 프랑스의 다른 선수들은 볼 수 없었다. 중계 선상에 이름을 올리는 이도 별로 없었다. 단상의 프랑스 대통령만 가끔 화면에 얼굴을 드러냈다.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이젠 자자. 자야 한다. 내일, 아니 오늘은 이번 주의 첫날이다. 월요일이다. 월요일부터 축 처지만 일주일이 내내 힘들다.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지만 잠은 영영 내 곁에 도사리고 있지를 않았다. 일어났다. 시원하게 그냥 경기를 시청하자고 나섰다. 그리고 텔레비전을 켰다. 후반전이 끝나가고 있었다. 2대 2였다. 내가 없었더니 음바페가 일어났구나 싶었다. 오늘은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메시 응원에 나서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연장전. 그러나 나는 또 화면을 껐다. 아무래도 메시는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나 보다. 그래, 조물주가 어느 한 사람에게 운을 뒤범벅으로 퍼부을 리 없다. 그만하면 됐다. 두고두고 회자 되겠지.
'메시, 발롱도르 컵을 여섯 번(일곱 번인가?)이나 탄 메시도 월드컵 우승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채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런 신문기사를 각오하자고 했다. 어쩌랴.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지. 연장 후반을 뛰고 있던 메시도 제법 지쳐있었다. 전반전을 맹활약하던 아르헨티나 팀원 전체가 지쳐버린 듯싶었다. 반면 프랑스는 아직 남은 힘이 있어 보였다. 마치 음바페 첫 골 이전이 전반전이고 이후가 후반전인 듯싶었다.
메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연장 6분을 조금 넘겨 메시가 연장전 첫 골을 넣었다. 3대 2. 이젠 됐다. 진짜로 됐어. 천 번 만 번 변신해서 이 세상을 조물조물하는 것이 가능한 조물주라 할지라도 이젠 더는 간섭할 수 없다고 여겨졌다. 아르헨티나 승이구나. 그때 알고리즘이 가져온 구글 뉴스판의 기사 제목이 눈에 띄었다. 경기를 관전하고(?) 있는 옛 한일월드컵 때의 우리 감독이었던 히딩크도 단언했단다. 아르헨티나 전 선수들이 메시와 함께 한다고 했단다. '22 카타르 월드컵'은 메시의 아르헨티나 우승이 확실하다고. 나 역시 딱 잘라서 믿었다. 22년은 메시의 해이구나. 그러나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음바페는 페널티킥을 넣었고 프랑스 세 번째 골을 넣었다. 음바페의 해트트릭이었다. 메시를 넘어선 골 결정력이었다. 날카롭고 매서웠다. 페널티킥을 제외한 두 골 모두 날카로웠다.
내 기억에 월드컵 결승에서 승부차기가 있었던가. 해설진의 이야기로는 했나 보다. 어쨌든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명승부가 진행되고 있었다. 구석구석 빠짐없이 점검되고 있었다. 두 팀 모두 자기 팀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은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도 프랑스도 승부차기까지 왔는데도 묵묵히 진행했다. 크로아티아였던가. 그 나라에게 내놓은 세계 제1의 팀 브라질의 가지각색 전법 내놓기가 아니었다. 결승 두 팀은 서로를 너무 잘 안듯, 더은 운이라는 듯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음바페와 메시의 공차기 1번은 틀림없었다. 한데 음바페가 첫 골을 골인시키자 내 뇌리에서는 느닷없이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승부차기가 떠올랐다. 딱 그 모양새로 진행되리라는 예감이었다. 적중했다. 메시는 얄미울 정도로 쉽게 프랑스의 수문장을 요리했다. 프랑스의 두 번째, 세 번째 골을 넣을 주인공들은 얼굴에 이미 실패를 업고 있었다. 내 예감대로 승부차기가 끝나고 아르헨티나의 네 번째 골을 찬 선수는 상의를 벗어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쏟았다. 여러 선수가 아르헨티나 응원석 앞에 목놓아 울었다.
눈물 많다던 메시의 눈물은 확인하지 못했다. 음바페로부터 두 골을 먹고 연장에서 또 음바페로부터 한 골을 먹어 동점이 된 이후 메시의 눈빛은 이제 모든 것은 자기 손안을 벗어났다는 듯 모든 것을 내려놓은 눈빛이었다. 메시는 마치 아르헨티나인 땅인듯 여겨지는 자기 팀 응원석을 향하여 감사의 손 흔들기를 한참 했다. 이어 각 선수들, 스태프들과 친한 포옹을 했다. 특히 뒤에서 도우미로 뛰는 분들을 위한 포옹에 더 많은 감사를 담은 것 같았다. 메시의 인성이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기왕 못 잔 잠을 일부러 청하지 않았다. 수면 영상을 두세 번 작동시켰다가 시상식까지 모두 봤다. 영구 보관되는 단 하나의 월드컵 우승컵에 서너번 키스하면서 최우수 선수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에 오른 메시가 어찌나 든든한지 감격스러웠다. 마치 내 십 년 체증을 쏟아내고 난 듯 온몸이 둥실 온정신이 부웅 하늘 위로 구름 비행기 위에 오른 듯싶었다. 저 아래 메시를 위해 아낌없이 손을 흔들고 있는 아르헨티나와 남미는 물론 온 세상 축구팬의 환호성이 들렸다. 감사했다.
한 달여 진행된 '22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출발부터 말도 많았던 대회였다. 황금으로 거죽을 씌웠다는 메인 경기장, 더위 때문에 처음 치러진 겨울 월드컵, 축구 경기장에 냉방기를 놓겠다던 카타르.(정말 설치했나?). 리오넬 메시의 숙원 사업이 끝났다. 이는 곧 나의 숙원이기도 했다.
음바페도 대단했다. 발리슛(아마 그런 골은 발리슛 맞지?)으로 두 번째 골을 성공시켰을 때는 순간 음바페에게 많은 정이 갔다. 메시가 운동장을 떠나면 나는 아마 음바페의 덕후가 뒤늦게 진입을 할 듯도 싶다. 대단한 월드컵 결승전이었다.
나는 왜 리오넬 메시를 좋아할까. 리오넬 메시가 뭐길래 잠 한 숨 제대로 안 자고 매달렸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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