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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한글, 참 아름다운 나의 글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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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아름다운 나의 글자여!

 

 

 

한글, 아름다운 나의 글자여. 오랜만에 쓴 캘리

 

 

'아무스름하다.' 아니다. 아무스름하다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의 정신이 오늘 아침 처음 눈 떠 생각해낸 낱말이다. 내 시야에 포착된 오늘의 기에 알맞은 낱말을 붙인다고 떠올린 단어이다. 아무.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아무'는 '그 어떠한 것도 아닌'이라는 뜻의 부정 대명사이다. '스름하다'는 '옅은 빛깔 혹은 비슷한 형상'을 의미한다. 형용사에 덧붙이는 접미사이다.

 

이도 저도 아닌 창작이다 싶어 '아무'를 검색한다. 부정 대명사 '아무'가 아닌 '스름하다'에 어울리는 의미의 '아무'를 찾았다. 아무(雅舞). 우아하고 바른 춤이며 문무와 무무를 모두 일컫는다. '문무'는 문관 복장의 궁중무이며 '무무'는 무관 복장의 궁중 아악무로 알고 있다. 얼마나 고상한 낱말이냐. 아무스럽다(雅舞스럽다). 우아하고 바른 춤을 추고 있는 듯싶다. 하여 새로운 낱말 찾기나 새로운 낱말 만들기를 즐겨 하는 나의 뇌세포가 지닌 창작열을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부드럽게 감싼다. 잘했어.

 

창작은 모방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아마 자주 사용하는 '아스름하다'를 변용하여 사용해보고 싶었나 보다. 아슴푸레하다. 어슴푸레하다. 어스푸레하다. 아무스름하다. 이런 식으로 어감이나 의미가 비슷한 낱말들 사이 내가 끼워 넣고 싶은 형용사였으리라. 아무스름하다. 아무스름하다. 몇 번 소리 내어 발음해본다. 아슴푸레하다의 사돈네 팔촌쯤으로 내 어휘 사전에 삽입하련다. 어제가 10월 9일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님과 집현전 학자님들 그리고 주 보따리로 통했다는 주시경 선생님 덕분에 오늘 하루를 더 쉬었다. 감사드린다.

 

'울울하다(鬱鬱하다)'는 어울린다. 바깥 풍경을 내다보니 시월의 아침 하늘은 온통 검정에 가깝다. 하늘 천정의 흑색 구름 덩이는 사람을 답답하게 하고 콱 막히게 한다. 울울하다의 의미를 빌어와서 하늘을 해석한다. 울울하다는 하늘빛으로 봐서 오늘 조물주가 계획하고 있는 상황에 들어맞는다. 나는 이런 날들과 이런 류의 낱말에 어울리는 상황을 참 좋아한다. 집안에 콕 박혀있는 것이 취미인 나는 답답해도 좋다. 내 집, 내 공간에 콱 박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우울하다. 잿빛 하늘이다. 회색빛 하늘 천장이다. 하늘이 온통 거무튀튀하다. 아스름하다. 울민하다. 가느스름하게 뜬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가을날의 태양. 시큰둥하다. 적색에 등을 돌리다. 차다. 으스스하다. 맨발로 걸을 수 있게 된 베란다 정원의 바닥에 내려앉은 가을 햇볕이 참 살가워 다행이다. 안온한 기운을 품고 있으리라 기대되는 가을볕. 풍덩 잠기고 싶은 가을 하늘이 서서히 열리고 있다. 흑색이 쇠퇴해간다. 가을 태양의 문이 더디 열린다. 가을 하늘 아래 내사랑과 길을 걷고 싶다. 내사랑 군부대에도 가을이 와 있을까. 정리된 베란다에 내려와 앉은 가을볕이 참 예쁘다. 정리된 베란다 정원을 히노끼 원목이 아닌 곳도 맨발로 걸으면서 가을을 만났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촉감이 냉하지만 정갈하다. 세계의 시작 지점 저 아래에서 시작된 생명수가 혈액 속에 녹아 온 몸으로 치솟는다. 어제가 한글날이었다. 따오르는 낱말들과 구절들과 문장들을 몇 적어봤다.

 

오늘밤 달 그리고 별 하나

 

 

눈 뜨자마자 한글 관련 유튜브를 시청했다. 어젯밤에 몰입한 주제는 참 긍정적이었구나. 연휴 시작되면서 생각했던 한글, 한글날, 세종대왕에 관한 사유를 내팽개치지 않아 다행이다. 개안(눈 뜸)과 동시에 유튜브가 '한글'이었다. '개안'이라니. 심청이가 쫓아왔다. '나의 언어, 숭고한 내 삶의 표제어를 한낱 당신 일기에 이 모양으로 차용하다니. 새 아침을 시작하느라고 느리적느리적 뜬 눈에 감히 '개안'이라니. 그것은 아니지 않소? 좀 더 고차원적인 글에 써야 할 것이 아니오? 예를 들자면 말이오. 심청전 관련 논문 백여 편을 공부하여 심청의 개안에 담긴 삶의 철학을 짚어냈다 등의 문장 같은 것 말이오.'  조선 후기 백성들의 두뇌를 눈 뜨게 한 한글 소설 중 하나인 심청전을 생각해봤다.

 

책장을 정리하려 들면 곳곳에서 여러 공책이 발견된다. 대부분 지난 시절 내가 종이에 남긴 메모들이다. 내 생각을 적은 글들이 참 어설프지만 고맙다. 다음 날이면 대부분 나의 뇌를 떠났을 많은 종류의 공부들. 공부하기를 향한, 얕으나마 꾸준한 관심으로 현재 내 생이 그나마 가능하다. 수많은 영화 감상문들이 이곳저곳에 적혀 있다. 영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 미쳐버릴 것 같아 숨을 죽이면서 공책을 펼쳤겠지. 내 타고난 글쓰기 능력의 부족함에 흘렸어야 했을 짙은 농도의 눈물 보자기들이 읽힌다. 그림들에 대한 생각. 제아무리 그려도 그것이 그것임을 깨닫고는 멈췄다가 다시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리고 여전히 그리고 있는 그림과 그 그림에 적은 한 줄 평들. 시들. 인상적인 문장들. 내 소중한 창조를 향한 발버둥들. 이런 과거가 있어 나의 현재가 가능하다. 이런 나의 과거는 한글 덕분에 가능했다. 살아냈다. 세종대왕님께 감사드린다. 당대로 돌아가 당신이 덮어주는 이불을 덮고 곤히 잠들 수 있는 집현전의 학자로 태어나는 것을 가끔 꿈꾼다. 

 

바람이 점령한 밤

 

 

유튜브에서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선생님이 한글을 이야기하셨다. 한자어 관련 내용이었다. 웃지 못할 실화 '심심한 사과'며 심한 공격을 받았던 영화 <기생충>에 대한 당신의 영화 한 줄 평을 말씀하셨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영화 <인사이드 르윈>도 말씀하셨다. '삶의 폐곡선에 물처럼 고인 우수'. 나는 이 두 문장을 사랑한다. 존경한다. 이동진 선생님은 나의 롤 모델이다. 반신욕에 들면 꼭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고 나오려고 노력하는 나는 이동진 선생님의 물속 독서를 본뜬 것일 것이다. 영화를 볼 때마다 평론가 평을 들여다본다. 이동진 선생님의 평에 의지하여 영화를 보는 편이다. 

 

한자어도 말씀하셨다. 한자어는 당연히 우리 것이다. 한글 종의 갈래에 명징하게 구분되어 있다.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외국어. 우리 글이다. 무려 6, 70%의 우리말이 한자어이다. 우리말 우리글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역사 경쟁이며 정치 현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미 우리 문화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 속에 있는 언어이다. 조금 어렵다고, 생소하다고 한자어를 버린다? 우리 문화의 팔뚝이며 몸뚱이를 잘라낸 격이다. 어쩌면 머리를 쳐낸 것일 수도 있다.

 

한자어는 배워야 한다. 중국 글자를 배우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말 속 한 갈래인 한자어는 배워야 한다. '심심한 사과'에 대한 문제 반응이 유아들이며 어린이들이 한 것이 아니다. 충분히 배운 사람들이 던진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문맹의 비율이 낮다고 우리 글자인 한글을 잘 사용하고 있다고 결론짓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해석이다. 문해력이 문제다. 문맥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 국사 교사 최태성 선생님이 말씀하셨던가. 언젠가 방송을 통해서 들은 기억이 있다. 고교 역사 시간에 '홍경래의 난'을 공부하던 중 '홍경래의 난'은 어떤 색 꽃이냐고 묻더라는 일화였다. 현 상황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이동진 선생님이 영화 '기생충'에 쓰신 '명징'과 '직조'라는 낱말이 나는 참 사랑스럽다. 이 칙칙한 내용의 영화에 이동진 선생님이 남기신 한 줄 평이 어쩌면 영화를 한 단계 승격시켰다는 생각까지 한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 사실 이 한 줄 평으로 <기생충>의 격이 한 단계 상승했다고 본다. 일종의 '승화'이다. '명징'은 '분명하다'라는 뜻과 '맑고 깨끗하다'의 두 의미가 있다. 이 한 줄 평을 읽던 날 나는 뒤쪽 의미를 부여해서 읽고 싶었다. '승화'라는 낱말을 연결하자면, 어쩌면 두 번째 의미가 훨씬 어울리겠다는 고집을 부려보고 싶었다. '직조'도 그렇다. '기계나 베틀로 베, 무명, 비단 따위의 천을 짜는 일'을 말한다. '바로 비추다'의 뜻도 있다. 마찬가지였다. 직조도 위 두 의미 모두 이 한 줄 평에 가능하다 싶었다. 문장으로 표현할 때 필요한 것이 여럿이다. 이동진 선생님의 한 줄 평은 언어의 리듬, 문맥의 흐름, 그리고 운율이 차지하는 값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는 이름을 붙여줄 때 '어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에 통한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도 처연한 계급 우화'는 '우화'나 '처연'이나 '계급', '신랄'과 어울리기에는 직조며 명징이 풀어쓴 것보다 훨씬 더 어울리겠다. 영화 <인사이드 르윈>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폐곡선에 물처럼 고인 우수'를 풀어보자. '삶의 닫힌 곡선에 물처럼 고인 근심과 걱정'. 영 재미없다. 이 영화를 두 번이나 본 나는 제대로 느낀다. 풀어쓴 뒤쪽 문장은 영화의 값을 떨어뜨린다. 말하자면 5점 만점에 2점 대의 영화라면 어울리겠다.

 

'덕유산에 상고대가 내렸습니다. 상고대는 수빙 혹은 나무 서리라고도 부릅니다.' 우리말 사전을 검색하였다.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를 말한다. 목가, 무송, 수가, 수개, 수상, 수괘, 수빙 등으로도 불린다. 영화 보기에 들어가기 전 내일 출근복을 준비하느라 텔레비전을 켰다. 마침 날씨를 안내하는 방송이 있어 몇 초 머무는 동안 들린 문장이었다.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의외로 '상고대'가 고유어이고 나머지 유사어는 모두 한자어이다. 낱말 하나하나 애써 명징한 목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 본다. 아름답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대단하다. 참 '상고대'의 옛말은 17세기 문헌에서 발견되었단다. '산고'에 이어지는 '대'는 디귿과 아래 아와 이를 합한 것이다.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안타깝다. 나는 아직 티스토리 블로그에서 우리 옛 글자 입력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반성한다.

 


달을 찍으려고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바람이 무섭다. 겨울옷으로 바로 건너가야 할까? 가을옷을 준비해뒀는데. 그것도 초가을 옷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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