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서 만나는 대기의 기운이 참 맑다.
늦잠을 의도했다. 생각대로 되려니 했으나 여덟 시가 채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한 시간여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검색을 했다. 무엇을 했던가. 검색하면서는 내내
'절대로 이 소중한 아침을 헛짓은 말자.'
하고 한 일이었으나 문제는 지금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무엇을 검색했을까. 무엇이 궁금했을까. 무엇을 찾아냈을까. 참, 환장할 노릇이다.
아홉 시를 넘기고서야 이불속을 나섰을 거다.
'아, 어서 일어날 것을.'
후회막급이었다. 오늘은 일요일. 화초들에게 물을 줘야 하는 날. 치카치카를 하고 나서 바로 작업에 돌입.
신기한 일이다.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은 절대로 머뭇거려지지 않는다. 아침이면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을 마치고 바로 물뿌리개를 든다. 호스를 튼다. 걸레를 준비한다. 어떤 날은 액체 비료와 함께 스포이트도 준비한다. 바로 화분에 물 주기를 시작한다. 허리에는 폰을 넣고 이어폰을 연결하여 유튜브 강의를 들을 채비를 했다. 내 생에 이렇듯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면서 해내는 것은 육아와 함께 화분에 물 주기이다. 숙명처럼 일요일을 이렇게 산다.
오늘은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제 오후 일부 세밀한 물 주기가 필요한 것에 물 공급을 했던 것이어서 오늘 일은 빨리 해내려니 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하다 보니 또 이것저것 눈에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단정하게 정리를 좀 하자 생각되어 화분들의 위치를 바꿔줬다. 뿌리내리기에 성공한 율마 둘은 본 분에 정식으로 옮기기도 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여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남자가 아침 녘에 꺼낸 점심 메뉴가 '카레'였다. 순 한식에 매달리는 남자가 카레를 말하는 것이 신기하여 필요 재료와 조리 방법을 간단하게 강의했다. 먹을 때에 눈여겨보라는 말을 덧붙였다. 마트를 다녀오고 부엌에서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이 느껴져서 어찌 하려나 보다 기대가 컸다. 사실 오늘은 배가 고팠다. 나는 화분 관리 마무리에 맞춰 밥을 먹자고 주문했다. 끝내고 들어와 보니 그는 재료만 정리해 둔 채 나의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짜증을 부렸다가 바로 카레를 만들기에 돌입했다. 다음 카레는 남자가 하는 것으로 예약을 굳게 다지고서 말이다.
(에이고. 사진을 안 찍었구나. 이런~) 나는 카레에 들어가는 내용물을 매우 굵은 덩어리로 넣는다. 고기며, 감자, 당근 등의 재료를 일반적으로 말하는 크기의 두세 배는 되게 한다. '욕구 불만족' 혹은 '애정 결핍증'이라는 주변인들의 진단에 상관없이 음식물의 덩어리를 엄청나게 크게 해서 오지게 먹는다. 그래, 입안 가득 씹는 맛이 참 오지다. 오랜만에 하는 요리 시간이 상쾌했다. 재료를 깔끔하게 다듬어놓은 것을 요리하니 참 마음 가볍기도 했다. 카레는 절차도 매우 간단하다. 맛있는 카레였다. 저녁까지 두 끼니를 먹었다.
오늘, 청소도 하지 않았는데 맨발로 만나는 거실 바닥의 기운이 참 깔끔하다. 몸 끝 모세혈관에서 감지되어 온몸으로 올라오는 대기의 기운이 참 산뜻하다. 말끔하고 개운하다. 오감으로 전달되는 기운에 생동감이 가득 찼다. 정신까지 맑고 경쾌하게 한다. 오늘 같은 날의 기운이 1년 내내 계속된다면 참 좋겠으나, 어쩌면 사계절이라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큰 행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후에는 유료로 듣는 강의 다섯 강을 들었다. 손으로 하는 실기의 어떤 것을 듣고 있다. 어서 듣고 열심히 해보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이 많을까. 자를 것을 잘라야 하는데 잘 안 된다. 하고 싶은 일도 정리가 필요할 것이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살아온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손위 언니의 명언이 어제 있었다.
'나는 하루 천 번 이상 감사하다고 기도드린다. 그럼 하느님이 다 들어주신단다. 감사해라.'
그녀는 천주교 신자이다. 어느 종교에도 소속되지 않은 나도 이 말에 수긍했다. 하느님이 들어주시든지 아니든지 어쨌든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이 참 행복하겠다고 여겨진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니까.
이번 주말에 본 영화는 '신의 구부러진 선', '겨울 여행', '슬픔은 그대 가슴에'에 이어 '여로'를 보고 있다. 옛 영화 두 편에서 맛보는 후덕한 필름의 맛이 참 괜찮다. 어디 고혹하게 할 만한 영화 어디 없을까. 일요일이 저물고 있다. 어서 하루를 정리하고 자자. 내일을 또 한 주일이 다시 시작된다. 월요병만 잘 치료하면 일주일의 근무 5일도 또 금방 가더라. 세월유수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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