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상야릇한 날의 기운을 어찌하랴.
아침이 수선스러웠다. 새로 사 온 의상을 코디하는 중에 함께 입을 가벼운 옷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주문했는데 출근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문 앞에 있다. 밤새 도착해 있는 이 물건들. 운송의 정확도와 빠르기에 탄복했다. 쿠팡은 참 빠르다.
'그때그때 일을 해결하자.'
이 알량한 내 삶의 주제는 출근을 멈추고 화이트와 블랙과 연주황색으로 온 긴 치마들을 해결하게 했다. 싸 온 비닐을 뜯고 주소가 적힌 부분을 찢어서 해체하고, 그리고 초벌 빨래를 해야 했다. 빨래는 하지 못했다.
덕분에 평소 출근 시각을 훨씬 넘겼다. 무려 십여 분.
바빠진 마음을 달래면서 현관문을 여닫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살갗에 오는 기운이 차다. 동시에 침을 삼키는 목의 기운이 약간 기우뚱! 미미하지만 통증이 느껴진다. 침을 삼킬 때 느껴지는 통증이 내 몸에 균형이 깨졌음을 말한다는 것을 잘 안다. 다시 현관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선다.
구김이 전혀 없는, 늦봄에서 초가을까지 착용 가능한 블랙 롱카디건을 챙긴다. 구깃구깃 쓰레기 뭉뚱거리듯, 재활용 종이에 캘리 한 구절 쓰고는 버리려고 두 손안에 한 뭉텅이로 뭉개듯, 구기고 뭉뚱그려서 출근용 큰 가방에 담는다. 잠시 후 일터 실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지고 내 몸을 감싸줄 녀석이 참 고맙다. 그야말로 가성비가 참 좋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젯밤 샤워를 무리했나 보다. 여섯 시쯤 취했던 저녁 식사 이후 한 시간 여 틈을 둔 후 시작한 실내운동을 너무 바쁘게 했다. 지나친 양의 큰 운동이기도 했다.
1. 스쾃 일백 개를 빠른 속도로 하기
2. 다리를 허리 위의 높이로 올려서 걷기 일백 개. 아마 일백십 개는 했으리라. 오른발과 왼발 걷기 한 쌍이 한 개다.
3. 두 발 동시에 뒤꿈치를 최대한 들었다가 내리기를 일백 개. 나는 진즉부터 해 왔는데 요즘 온 세상에 유행이라니. 게다가 숨은 키 크기 운동으로도 인기가 높다는 이야기에 흠뻑 웃고 말았던 기억이 며칠 전.
4. 달걀판을 오른쪽과 왼쪽, 즉 나란히 두 판을 삼십여 개(?)씩 올려놓고 올라섰다가 내렸다가 하기를 일백 개 하기. 이것도 오른쪽과 왼쪽 걷기로 오르고 내리기를 함께하여 한 번. 이 운동도 아마 일백십 개를 넘겼을 것이다.
온몸이 땀에 젖은 몸일 때,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을 때 냉수 샤워의 맛은 인생의 기쁨 중 십 위 안에는 들 것이다. 사람은 참 묘하다. 그리도 하기 싫었던 운동을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여름에는 냉수 샤워를 시원하게 해내려고 또 열심히 한다. 찬바람 시작되는 가을의 가운데 나는 또 반신욕의 맛을 좀 더 알차게 하기 위해서 실내운동을 또 열심히 할 것이다. 덕분에 몸은 잽싸게 달아올랐다. 냉수 샤워 후 만족감을 최고조에 달하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비록 어젯밤 지나친 운동과 복에 겨운 냉수 샤워를 길게 하여 육체의 컨디션이 난조에 돌입하게 했지만, 운동이 참 고마운 구석이 여럿. 우선 건강이 좋아진다. 누구 모르는 이 있겠냐마는 내 경우, 소화기관 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 네다섯 해는 되었는데 질병 징후를 약하게 하는 데에 운동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 이젠 종근당에서 나온 비타민c를 섭취하는 데에도 제법 수월해졌다. 발명 초기에는 쉽게 삼킬 수 없어 마니아인 우리 집 남자가 갈아주기까지 했었다. 요즈음 맹물에 쑥쑥 잘도 넘긴다.
둘째 영혼도 가볍게 해주는 묘약이다. 운동 후 냉수 샤워며 반신욕 등의 절차를 해내면 묘하게 하루 동안 쌓인 온갖 복합 미묘한 감정들을 말끔하게 정화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분노도 사그라진다. 늘 내게 부족한 것 있어 아쉬움에 절어있는 기운도 평탄하게 조절해 준다. 평생 암울을 운명이라 여기고 사는 내 삶의 태도를 반성하게도 한다. 가장 가깝게는 '웃고 살자'는 가벼움을 취하게 하여 정신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게 한다.
온몸이 깔끔하게 느껴질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상태에서 냉수 샤워를 할 수 있는 절기가 서서히 마감되어 간다. 한여름 샤워처럼 한참을, 마음껏 냉수 마찰로 보낼 수 있는 시기가 이제 다 하지 않았나 싶다. 드라이 바람이 싫어 선풍기 앞에서 머리 말리기를 하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자연 말림을 해야겠다.
자, 진짜로 오랜만에 아침 일기를 썼다. 이 또한 기쁘다. 강남 고속 터미널 옆 신세기 백화점의 명품 코너는 아이쇼핑으로 마치고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산 단돈 삼천 원짜리 통바지를 입은 내 모습이 참 이쁘다. 얼굴에 주름만 없으면 누구 붙잡고 데이트해도 좋을 차림이다. 몸도 마음도 참 가뿐한 이 아침. 요 며칠 이상 야릇한 기운을 느끼게는 하지만 대기의 기운이 참 사랑스럽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들은 핵융합에 관한 유튜브의 강의 내용도 참 좋았다. 다시 태어나면 물리학 공부를, 생화학 공부를 좀 열심히 해보고 싶다.
이 다양한 기운의 하루. 모두 멋진 하루를 만드시라.
참, 영화도 참 좋다. 지난주에 나를 찌들게 했던 주제를 영화 '이퀄라이저 1, 2' 시청하기로 상쇄할 수 있었다. 덴젤 워싱턴은 참 괜찮은 영화배우이다. 매우 지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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