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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하루 공개

휴지통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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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통을 비웠다. 인터넷에서 휴지통을 비웠다. 속 시원하다.

 

내 컴퓨터 휴지통의 상태가 이리 되었다. 가뿐하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엊그제 일요일은 화분에 물을 주는 날. 물을 줘야 하는 날의 간격이 짧아졌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화초를 구분하여 10일에 한 번, 3주일에 한 번씩 실시했던 것을 지난주부터 일주일에 한 번, 2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방식으로 교체하였다. 선선한 기운이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녁 내내 여름 홑이불을 개켜 넣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 며칠 전부터는 예비로 머리맡에 뒀던 홑이불 한 장을 겹으로 덮어야만 곤한 잠에 들 수 있었다. 사방으로 터진 문을 닫고서도. 수면에 필요한 이불의 종류 혹은 개수로 깨닫는 신체가 화초들의 물 주기도 결정한다. 어제는 또 열대야를 느꼈지만 아무튼.

 

혼자 있는 주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 주말은 마냥 갑갑하고 답답했다. 일터, 지난주 내내 자기주장을 펼쳐야 할 일이 발생했다. 각자 주장을 내놓고 펼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윗선에 우리의 주장을 구현해야 할 목표화를 해서 표해야 하는 내용. 그 끝에 저항의 행동을 펼쳐야 하는 상황.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게 주장을 문의해 왔다. 함께하자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그만하면 윗선의 입장이 이해되니 그만 멈추자는 내용. 두 방향으로 분리되었다. 골치가 아팠다. 솔직한 심정을 말했으나 끝없이 나의 의견을 두드렸다. 피곤하고 잠을 못 잤다. 하여 그제와 그제와 그끄제에는 머리 감기를 생략하고 세수와 샤워만으로 이른 밤에 시작되는 수면을 취했다. 마구마구 잤다. 별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연 이틀 아날로그 일기도 제쳐뒀다. 슬픈 일주일을 지내고 난 후유증이었다.

 

화초 그림 모음. 위의 화초들이 모두 키우는 것은 아니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일요일, 물조리개를 들고 섰는데 화분들도 내 심사를 뒤트는 것이 보였다. 사실 새롭게 보인 것이 아니다. 진즉 심란한 꼬락서니로 있던 모양새들이 새삼 징그러워졌다. 몇 화분을 거둬 버리기로 했다. '남자가 흙을 버려야 할 것'에 포함시켜 한쪽에 팽개쳐뒀다. 베란다 중앙을 화분이 차지하지 않도록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보니 그에 맞지 않은 꼴사나운 분들이 제법 보였다. 사실, 그런 모습을 하게 한 것은 순전히 거주자인 내 탓이지만 녀석들이 괜히 싫고 미웠다. 허술한 모습으로 발랑 나자빠져 있는 화초며 분들이 너무 싫었다. 다른 일요일보다 한 시간 정도 더 많은 시간을 베란다에 물을 주고 화분을 정리하였다. 화분 수가 징그러워졌다. 화분들을 모두 어느 화분 가게에 말해 가져가게 할까도 생각 중이다.

 

내 컴퓨터의 휴지통 상태와 비슷하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베란다 등을 돌면서 일을 마치고 블로그 일기를 쓰기 위해 들어와 보니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점령한 사진들이며 폴더들, 파일들이 엄청났다. 분명 꼭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언젠가 이곳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쓰고 이용하기 위해 저장해 뒀을 것인데 새삼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휴지통에 버릴까 하는데 휴지통 또한 가득 차 있고 우뚝 쌓인 것들이 엄청났다. 열어보니 무려 2천 개가 넘은 파일이며 문서가 담겨 있었다. 

'아, 나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인물이구나.'

일상에서의 습관은 컴퓨터 정보 저장에서도 그래도 드러난 셈. 

 

5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각만 고심했다. 버리기로 했다. 휴지통 속 파일이며 폴더 등에 담긴 문서와 사진, 영상 등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순간이었다. 휴지통을 열고 '버리기'를 누르고 그래도 버리겠다고 했더니 컴퓨터는 바로 버려줬다. 순식간에 방을 텅 비워줬다. 고마운 녀석. 버린 것, 버려진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텅 빈 휴지통을 보니 마음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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