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통을 비웠다. 인터넷에서 휴지통을 비웠다. 속 시원하다.
엊그제 일요일은 화분에 물을 주는 날. 물을 줘야 하는 날의 간격이 짧아졌다. 물을 좋아하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화초를 구분하여 10일에 한 번, 3주일에 한 번씩 실시했던 것을 지난주부터 일주일에 한 번, 2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는 방식으로 교체하였다. 선선한 기운이 본격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녁 내내 여름 홑이불을 개켜 넣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 며칠 전부터는 예비로 머리맡에 뒀던 홑이불 한 장을 겹으로 덮어야만 곤한 잠에 들 수 있었다. 사방으로 터진 문을 닫고서도. 수면에 필요한 이불의 종류 혹은 개수로 깨닫는 신체가 화초들의 물 주기도 결정한다. 어제는 또 열대야를 느꼈지만 아무튼.
혼자 있는 주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 주말은 마냥 갑갑하고 답답했다. 일터, 지난주 내내 자기주장을 펼쳐야 할 일이 발생했다. 각자 주장을 내놓고 펼치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윗선에 우리의 주장을 구현해야 할 목표화를 해서 표해야 하는 내용. 그 끝에 저항의 행동을 펼쳐야 하는 상황.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게 주장을 문의해 왔다. 함께하자는 방향이 있는가 하면 그만하면 윗선의 입장이 이해되니 그만 멈추자는 내용. 두 방향으로 분리되었다. 골치가 아팠다. 솔직한 심정을 말했으나 끝없이 나의 의견을 두드렸다. 피곤하고 잠을 못 잤다. 하여 그제와 그제와 그끄제에는 머리 감기를 생략하고 세수와 샤워만으로 이른 밤에 시작되는 수면을 취했다. 마구마구 잤다. 별로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연 이틀 아날로그 일기도 제쳐뒀다. 슬픈 일주일을 지내고 난 후유증이었다.
일요일, 물조리개를 들고 섰는데 화분들도 내 심사를 뒤트는 것이 보였다. 사실 새롭게 보인 것이 아니다. 진즉 심란한 꼬락서니로 있던 모양새들이 새삼 징그러워졌다. 몇 화분을 거둬 버리기로 했다. '남자가 흙을 버려야 할 것'에 포함시켜 한쪽에 팽개쳐뒀다. 베란다 중앙을 화분이 차지하지 않도록 배치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보니 그에 맞지 않은 꼴사나운 분들이 제법 보였다. 사실, 그런 모습을 하게 한 것은 순전히 거주자인 내 탓이지만 녀석들이 괜히 싫고 미웠다. 허술한 모습으로 발랑 나자빠져 있는 화초며 분들이 너무 싫었다. 다른 일요일보다 한 시간 정도 더 많은 시간을 베란다에 물을 주고 화분을 정리하였다. 화분 수가 징그러워졌다. 화분들을 모두 어느 화분 가게에 말해 가져가게 할까도 생각 중이다.
베란다 등을 돌면서 일을 마치고 블로그 일기를 쓰기 위해 들어와 보니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점령한 사진들이며 폴더들, 파일들이 엄청났다. 분명 꼭 필요하다고 여겨져서 언젠가 이곳 블로그에 올리는 글로 쓰고 이용하기 위해 저장해 뒀을 것인데 새삼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휴지통에 버릴까 하는데 휴지통 또한 가득 차 있고 우뚝 쌓인 것들이 엄청났다. 열어보니 무려 2천 개가 넘은 파일이며 문서가 담겨 있었다.
'아, 나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인물이구나.'
일상에서의 습관은 컴퓨터 정보 저장에서도 그래도 드러난 셈.
5초도 채 되지 않은 시각만 고심했다. 버리기로 했다. 휴지통 속 파일이며 폴더 등에 담긴 문서와 사진, 영상 등을 모두 버리기로 했다. 순간이었다. 휴지통을 열고 '버리기'를 누르고 그래도 버리겠다고 했더니 컴퓨터는 바로 버려줬다. 순식간에 방을 텅 비워줬다. 고마운 녀석. 버린 것, 버려진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텅 빈 휴지통을 보니 마음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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