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걸어야 했다.
내 발등을 내가 찍었다. 생활 장면 곳곳에서 내가 범하는 오류는 참 많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도드라질 정도로 강력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밤이었다. 혼자 나게 되는 시간을 마음껏 즐기겠다는 생각에 걸림돌이 있었다. 배 속이었다. 부글부글 뱃속이 끓어오른다든지 배가 아프거나 통증을 체감하는 등 요란스러운 증상은 아니었다. 아랫배는 물론 가슴 바로 아래까지 차오른 기운이 너무 무겁고 기분이 나빴다. 마음 가볍게 즐거운 기분의 밤을 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것이 두려웠다. 이 소중한 시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억울하기조차 했다. 나는 나 혼자 있는 시간을 무지막지하게 좋아한다.
저녁 식사량이 많았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 온몸이 부담스러운지, 소화가 되지 않았다. 어떤 종류의 식사였던가. 뭐 무리한 음식도 아니었는데. 내 멋대로 지지고 볶아서 요리한 메뉴였다. 나 혼자 있을 때면 거리낌 없이 온갖 잡것들을 섞어서 만든 요리. 두부와 달걀을 섞어 으깨고 대여섯 채소를 잘게 썰어 합한 다음 토마토소스와 참치 통조림 한 개를 들이부어 끓인 것. 물론 입안 가득 씹는 맛과 고소함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체다치즈와 모차렐라 치즈도 위에 얹고 뿌렸다.
경험이 중요하다. 몇 주 전 거의 똑같은 상황을 치러냈던 때가 떠올랐다. 아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옷은 이미 외출이 어려운 실내복이었으며 저녁에서 거의 밤으로 치닫고 있던 시각이었다. 낮 동안에도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은 생활의 내가 그런 시간대에 어딜 나가랴. 하여 나는 운동을 실내에서 하기로 했다. 얼마 전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실내 걷기를 하기로 했다.
자, 실내 곳곳 문을 열어둔다. 어느 곳으로든지 발길 내디딜 수 있어야 한다. 걷는다. 부지런히 걷는다. 열심히 걷는다. 숨이 막힐 정도로 바쁘게 걷는다. 걷자. 걷기로 했다.
실내 걷기를 하는 데에는 도구가 필요하다. 실외용 운동화이다. 러닝용 새 운동화. 아주 예민한 청각을 지닌 것으로 생각되는 아래층 사모님(?)의 건강이 걱정된 우리 집 식구들은 층간 소음 예방을 위해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 있다. 실내에서 스펀지형 밑창을 지닌 슬리퍼를 신거나 운동화 새것을 신고 걷는다.
운동화를 신고 온 집안을 걸었다. 무의미하게 넓은 평수의 아파트는 삼십 분을 걷는데 배 속이 꺼질 만큼 운동의 힘이 컸다. 부지런히 걸었다. 공간이라고 마련된 모든 곳을 바쁘게 걸었다. 더 걸으려니 했는데 왼쪽 발이 이상했다.
'아, 지난번 걸을 때도 분명 이런 증상이 있었지. 나는 왜 잊었을까. 왜 꺼진 배 속만 생각했을까. 어쩌자고 진짜 중요한 통증은 지워버렸을까.'
통증을 의식하고 보니 지난번에 느꼈던 통증의 강도를 훨씬 넘어선 정도였다.
몸을 씻고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인 왼쪽 발의 왼쪽 부위가 확실한 강도로 아팠다. 왼쪽 발등에서 왼쪽 발의 왼쪽 발가락 쪽으로, 즉 새끼발가락 쪽으로 흐르는 선이 문제가 생겼다. 좀 더 살펴보니 뼛속 깊이 침투한 고장은 아니었으나 정상적인 발걸음이 쉽지 않았다. 마라톤 절반을 완주하는 남자에게 물었더니 말했다.
"별것 아니야. 며칠 후면 괜찮아질 거야. 엄살은 그만!"
어제, 월요일 출근길에 걸린 시간이 평소 걸린 시간의 두 배였다. 비가 내려서 운동화 대신 워커를 신어야 했던 것도 통증을 배가시킨 원인이었다. 통증의 세기가 강해진다는 것은 병원에 가야 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 무서워졌다. 나는 마치 병원에 처음 가게 되는 아기처럼 병원이 무섭다. 아니 싫다. 어느 날 일기장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앞으로 어떤 질병이 내게 오더라도 약을 먹고 치료가 될 정도를 넘어선 질병이라면 차라리 병원 출입을 멈추겠노라.'
더 쓰는 것은 바보스럽던지, 나 스스로에게 무책임하던지, 멍청하던지, 용기 백 배의 삶을 살고 있다든지 증 여러 갈래로 해석 가능하겠다.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급기야 일터 젊은 동료에게 물었다.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해서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병원에를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어~, 어서 다녀오십시오. 큰일 납니다. 경험했습니다. 인대가 놀란 듯싶은데 그냥 두면 크게 문제가 됩니다."
불안해졌다. 그래, 가야지. 가야 되겠지. 건강 예상 나이 일백이십을 사는 남자가 해주는 섣부른 판단에 의한 조언보다 경험자의 산 경험이 훨씬 값지다. 가자. 퇴근 시간을 조금만 앞당겨서 다녀오자.
오후가 되었고 내가 어제 해야 할 일은 또 태산이었다. 결국 동료들이 거의 다 퇴근을 한 후에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퇴근길을 걸어보자.'
사실 병원에 갈 생각이 있기는 했으나 병원은 내가 되도록 가지 않기로 한 공간이므로 대체 방법을 떠올린 것이 일터 건강 센터 책임자의 조언이었다.
"선생님, 제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한 운동을 해서 요렇게 통증이 있는데요. 저와 함께 사는 사람의 진단으로는 병원에 갈 일은 아닌 것 같다고 하고요. 어찌, 무슨 방법이 있을까요? 진짜로 병원에는 가기 싫어요."
"아, 그래요? 신~파스라고 있는데요. 신~파스 끝에 R~이라고 있거든요. 그것 붙이세요."
퇴근길, 집 가까이에 있는, 너무 날카로워 약국에 가는 것마저 무섭게 만든 약사 선생님으로부터 '신시~파스 R~'을 사 왔다. 상비약품이라는 것이 이래서 상비약품이더라. 일요일에, 통증이 느껴지던 바로 그때 붙였더라면 월요일 출근길에 이미 통증은 거의 가셨을 텐데 상비약품이라는 것을 갖추고 있지 않아서 이렇게 문제가 커졌다는 생각이 순간 들어서 무려 세 뭉치를 사 왔다.
마구마구 붙였다. 파스 붙이기를 검색했더니 이놈의 알고리즘이 발바닥에 파스를 붙이면 또 얼마나 효과가 큰지 경험해 보라는 정보를 내게 읽게 했다. 많은 양을 사 왔으므로 발바닥에도 붙였다. 내일이면(오늘을 말한다.)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품고 블로그 일기를 쓰는데(어젯밤!) 쏟아졌다. 잠이 쏟아졌다.
사실 어제 종일 온몸과 마음이 힘들었다. 칼로 째고 가위로 자르고 무엇인가 대체 자료를 삽입하는 등 의술에 관련된 내용을 떠올려보면 세 발 피도 안 되는 통증을 달았는데 왜 이러는가 싶을 정도로 온몸이 힘들었다. 영혼이 쭈뼛쭈뼛 일으켜 세워지기를 엄청난 힘이었다. 넋을 뒤흔들더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죽는소리가 되겠지. 그러나 사실이었다. 퇴근길을 '세월아 네월아'하면서 걸어야 했다. 옛 시절 한량들 희희낙락 유랑하면서 걷는 걸음이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것과는 정반대로 나간 걸음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아,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리라. 젊은 시절에 앓던 아픔과는 비교가 안 되는구나. 조심해야겠다. 털끝도 아프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다. 내 몸 살살 달래면서 살아야겠다. 함부로 움직일 일이 아니구나. 운동화를 신고 실내를 걸으면서도 아마 층간 소음에 대한 걱정이 작용했나 보다. 너무나도 예민한 사람일 것이라는 추측이 내 발걸음에 무거운 조심성을 매달게 했나 보다.
좋은 경험이었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이 이팔청춘인 것처럼 산다. 바꿀 일이다. 내 몸 다스리는 일을 이제는 바꿔야겠다. 영원한 십팔 세가 아니다. 젊음은 갔다. 나의 젊음은 이미 내 몸 밖에서 산다. 붙잡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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