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여자는 부엌에서 넘어지면 죽고 남자는 목욕탕(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죽는다

반응형

 

여자는 부엌에서 넘어지면 죽고 남자는 목욕탕(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죽는다?

 

야채를 얼마나 많이 했는지, 야채에서 쏟아진 수분이 한강을 이뤘다. 피자가 맞나 싶었으나 맛있게 먹었다. 사진 제목을 '동서양의 조화'라 했다.

 

 

올겨울 일터 동료의 집들이에서 받은 충격으로 우리 집도 정리 정돈을 좀 하기로 했다. 나 혼자서 하는 다짐이었다. 지난해 연말, 정확히 2023년 12월 30일 토요일에 시작한 큰일이다.

 

서너 봉지의 옷을 버렸다. 우선 안방에 딸려 있고 현관 쪽에 있는 두 화장실을 말끔하게 정리했다. 바닥이며 벽의 줄눈까지 하얗게 빛이 나도록 닦았다. 뒤쪽 다용도실도 줄눈까지 말끔해졌다. 유튜브 여기저기 뒤져가면서 열심히 공부했다.

 

두 화장실은 욕조며 샤워 부스가 따로 있어 나머지 공간은 건식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매일 화장실 바닥을 닦는다. 깨끗해서 매일 하는데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마음이 참 편해진다. 진즉 좀 이렇게 하고 살 것을 어쩌자고 그리 더럽게 해놓고 살았을까를 반성한다.

 

안방 화장실 대형 욕조도 부지런히 청소한다. 마치 건식처럼. 사용하고 나면 바로 청소하기로 작정했다. 이를 잘 실천하고 있다. 남자가 사용한 후에 하는 청소라서 마음은 영 마땅치 않은 표정을 가득 내뿜고서 했다. 매 끼니 음식은 잘 해 먹는데 청소는 젬병이다. 그래, 여자가 삼시세끼 음식을 넙죽 받아먹는데 욕조 청소쯤 못하랴.

 

욕조 청소를 마무리하는데 문득 며칠 전 욕조를 넘어오면서 하던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미끄럽다고 했다. 물론 소주 한 잔 넉넉하게 걸친 날이어서 그랬다. 술 마신 날은 욕조 말고 넘나들 필요가 없는 샤워 부스를 사용하라고 고시랑고시랑 말을 덧댔었다. 사실 아찔한 생각이 떠올라 움찔했다.

 

지난해 가을 놀이 삼아 한양 땅에서 내려온 언니에게서 들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누구 손님이 왔다고 생각될 때면 조리대와 싱크대 앞에 서는 내게 언니가 한 말이다.

"아이, 종일 일터에서 일하느라고 힘들었을 텐데 미안하다야. 설거지는 내가 하마."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인데 이상하게 우리 집에 오면 부엌 작은 일에는 일손을 더하지 않는다.(김치 담기나 생선 손질하기 등 큰일은 언니가 다 해주고 간다.)

 

내 부엌이니 내가 하겠다면서 설레발을 치는 내게 언니가 말을 이었다.

"아이, 우리 엄마 하던 말씀이 있어야. 여자가 부엌에서 넘어지면 죽고 남자는 목욕탕(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죽는다고야. 말하면 여자들이 너무 힘써서 부엌일을 하다가 쓰러지니까 조심하라는 것이랬어. 조심 해라야. 부엌에서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발버둥 치지 말라는 것이지. 적당히 하고 살아라야."

 

내가 묻는다.

"남자는 목욕탕(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죽는다니 그것은 무슨 말?"

"글쎄이~, 아마 화장실에서 똥 싸느라고 너무 힘주다가 뇌출혈을 당한다는 말이거찌야? 안그냐?"

"엥? 변비가 심하기로는 여자가 더한 것 아닌가? 참 내, 그것은 말이 안 되네. 뭔 남자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아이, 옛적부터 남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니까 그런 경향이 더 있었겄지야, 안 그러냐?"

언니가 덧붙였다.

"근께로 언제 마을 누가 죽었는디 말이다. 엄마가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함시로 그 사람이 넘어져서 안 보여서 찾아보니까 화장실 앞에 죽어 넘어져 있더라고 함시로 혼잣말로 하시던 말씀이어야. 내가 똑바로 기억한다야. 죽은 사람이 누군가는 모르겄는디 말이다. 너는, 으째 뭔 말을 하면 꼭 이유를 다냐? 성질도 지랄 같어야이. 사람 안 변해야. 어릴 적부터 더렇게 싸나워 가꼬 나를 해 보든마는 지금도 절대로 안 지겄다는 것이네."

"그래, 그래. 그렇다 치자. 하하하하하."

 

우리 엄마가 말한 이 문장은 아마 남성우월주의 유교 사관을 살던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만난 문장이겠지. 언니에게 들을 당시 이런 문장이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상황이 몹시 궁금했다. 언젠가 들먹이기 위해 이곳 블로그 임시 저장에 앉혀뒀던 이 문장이 생각나 오늘 불러와 글을 쓴다.

 

사실 이 문장은 어쩌면 시효가 다했는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가 나 살아가는 것을 보신다면 '상전벽해'를 실감한다고 성토하시리라.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온갖 것 다 넣어 일주일을 요리할 육수 끓이는 남자와 사는 막내딸이 얼마나 한심할까. 혹시 다행스럽다고 생각하실까. 요즘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문장, 대부분 부엌일을 남자가 다 하는 우리 집과는 전혀 맞지 않는 문장. 우리 엄마가 말씀하셨다는, '여자는 부엌에서 넘어지면 죽고 남자는 목욕탕(화장실)에서 넘어지면 죽는다.'가 생각나 오늘 저녁 식사는 내가 요리했다. 아주 간편한 '또띠오 피자'를 마련했다. 크크. 하긴 화장실 청소며 화분에 물 주기에 청소는 또 전적으로 내가 하고 있으니 서로 낫고 못함이 없다. 어쨌든 술 몽땅 마신 날의 남자에게는 꼭 대형 욕조가 아닌 샤워 부스에서 씻을 것을 다짐받아야겠다.

반응형

'문학 > 내 어머니의 언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글뱅이  (61) 2024.03.15
잔상  (93) 2024.02.05
와따 많다야  (87) 2024.01.10
짜잔하다  (74) 2024.01.07
뉘가 난다고~  (66) 2023.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