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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짜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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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하다.

 

못 생긴 사람으로 검색하여 업어온 사진.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늘 서툴렀다. 손아래 남동생이 해내는 일에 비해 내가 하는 일은 왜 그리도 어설펐는지. 손으로 머리로 해야 하는 일 뿐만이 아니었다. 키며, 얼굴이며 생긴 것부터 모두 서툴렀다. 한 어머니, 한 배에서 나왔는데 나는 왜 그리도 부족한 것이 많았는지.

 

"어이구, 내 손주(엉덩이를 부드럽게 토닥거리면서, 남동생에게 말이다.), 어찌 이리 미남이누. 뉘 아들이 이리 멋지게 생겼나. 잘도 생겼지. 잘도 생겼어."

할머니는 대도시로 유학 온 나와 남동생을 살펴 주셨다. 할머니는 늘 남동생을 이렇게 칭찬했다. 칭찬이라. 뭐, 타고난 것이니 굳이 티가 나게 칭찬할 것인가 마는 할머니는 남성우월주의를 철저하게 사시는 분답게 내 앞에서 동생을 칭찬하거나 두둔하는 일을 수시로 하셨다.

 

내게 '의식'이라는 것이 시작되었던 때부터 나는 철저하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생을 진행하였다. 비단 할머니만이 아니었다. 똘똘하면서도 씩씩한 남동생이 든든하기도 하였으리라. 그렇다고 나는 별다른 생각을 따로 하지도 않았다. 딱 지금처럼, 그저 그러려니. 지금 생각해봐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잘 생기고 야무지고 건강하니 그러고 싶으셨을 거다. 마땅한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려니 하고 살았다. 남동생이 주연으로 움직이는 생활 무대의 한쪽 끝에 쪼그라져서 나는 그야말로 멍한 상태로 살았다. 

 

사실이었다. 어쩐다고 머리 꼭대기부터 그렇게나 대단했는지 모르겠다 싶었다.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큰 키에(어릴 적부터부터 말이다.) 머리숱은 어떻게나 짙은 밀림이던지 낱낱의 머리카락이 가닥가닥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 뭉치 머리카락 산을 무리 위에 얹어놓은 듯 머리가 정통의 검은색 까만 숲이었다. 코는 어쩌면 그리도 잘 생겼는지. 오똑했다. 커다란 눈은 건너 뛰자. 늘씬한 다리에 첨벙첨벙, 특히 장대비가 내리는 날, 내 발 크기 둘을 더한 것보다 더 큰 부피의 장화로 큰물을 건널 때면 위대한 장군이 내 앞을 걸어가는 듯싶었다. 나는 늘 동생의 어슷한 거리 1m 정도의 뒤, 대각선 선상에 서서 벌써 나보다 훨씬 큰 사람을 바라보면서 걷곤 했다.

 

엄마는 그러셨다. 늘 안쓰러운 듯 나를 향해서 동정 비슷한 생각을 담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쯧쯧'이라는 상징적인 기호가 틀림없이 떠오르는 상황을 만드셨다.

"아이고, 우리 막내딸, 어떡허냐. 어찌 이리 못난이로 생겨서 나왔을꼬. 어디 가나 귀한 대접을 못 받아서 어쩌꺼나. 명심해라. 근께 말이다, 어쨌든지, 절대로 짜잔한 짓거리는 하면 안 된다. 그럴수록 탄탄해야지야, 어떤 일에든지 짜잔하면 안 된다. 알았냐, 알았어?"

나는 멍한 눈으로 답했다. 대강은 아겠으니 걱정하지 마시라.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라고 한두 번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아마 나는 늘, 짜잔하게 일을 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 거다. 남의 눈에 적어도 짜잔한 사람은 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살았을 거다. 진정 옳은 일이었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들지 않은 것도 아니다. '짜잔하다'의 기준이 무엇일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다.

 

‘짜잔하다’는 ‘못나다’의 남도 방언이다. '쓸모가 없다'는 뜻과 함께 ‘물짜잔하다’도 함께 쓴다. 해야 할 일을 어리숙하게 하거나 실하지 못하게 해낼 때 사용하는 말이다. 앞뒤 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일을 해결할 때 사용하는 낱말이다. 그래, 짜잔한 사람, 짜잔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한다.

 

아, 사실은, 그리 못난 얼굴도 아닌데, 나! 어렸을 적, 왜 그리도 나를 못났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너무나 잘생긴 동생 옆이어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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