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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내 어머니의 언어

와따 많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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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따 많네에~

 

들깨 나무가 이렇게 생겼던가. 픽사베이에서 '들깨'로 검색하여 가져옴

 

 

오랜만에 유튜브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에서 강의를 들던 중이었다. 강의가 시작되고 채 몇 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나는 그만 '푸웁' 하고 속이 텅 빈 웃음을 터뜨려야만 했다. 박사님의 강의 끝에 진행자인 삼프로 정영진 님이 위 문장을 내놓았다. 멋진 톤, 중후함 잔뜩 묻은 목소리로 구수하게.

"와따 많네에~"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최준영 박사님의 강의 내용은 미국 남부의 한 주인 '플로리다주'에 관한 것이었다. 'CSI 마이애미'로 유명한 곳이면서 '선키스트 오렌지'로 익숙한 곳. 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그곳 모습으로 야자수와 드넓은 바다로 멋진 곳이다. 이와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쭉 뻗은 도로를 확인할 수 있는 곳. 오늘 재미있게 들은 강의 내용은 다음에 별도로 요약해 보기로 하고. 

 

들깨인가? 안 듯도 싶고 그런 듯도 싶고.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들깨로 검색함.

 

 

아마 우리 엄마, 밭에서 얻은 수확물을 집에 가져와 정리하면서 말씀하셨을 거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부추? 깻잎? 무엇이었을까? 아하, 맞다, 맞아. 참깨나 들깨를 수확해 온 날이면 틀림없이 하셨던 것 같다. 물론 내 뇌리에 남아있는 흐린 영상은 몇 편에 불과하지만 아득한 가운데 확실히 남아있는 우리 엄마의 모습과 말씀이 있다. 여기에서 진즉 읊은 것처럼 나의 시골 생활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4학년이었던가? 이런, 기억이 왔다 갔다 하는 이유는 뭐냐?) 끝났으므로 그리 많이 들은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더욱 생생하게 남아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들깨며 참깨, 두 가지의 깨 종류, 이 둘을 키워내기와 수확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웠던 것 같다. 특히 수확하는 것이 힘들었다. 심기에서 수확까지 단 한 번도 내 손이며, 내 힘이며 나의 노력을 투자하지 않은 나는 어쩌다가 어느 날 밭에서 수확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날은 아마 들깨를 수확하였던 듯싶다.

 

고소한 냄새와 향기와 그에 따른 입맛까지 가족들의 오감을 고스란히 충족시켜 줄 생각에 우리 엄마는 한껏 들떠 있었다. 아침부터 말이다. 그깟 수고로움일랑 거뜬히 이겨낼 것에 불과한 일 인듯 열심이셨다. 밭 가득 채운 들깨나무(나무가 맞지 아마?)를 모두 낫으로 베어 모은 다음에 베어낸 땅 넓은 곳에 넓은 비닐판을 깔았다. 그곳에 거둔 나무들을 주욱 펼치고 나무의 죽은 몸 때리기가 이어졌다.

'축척축척축척축척 칙척칙척칙척칙척'

어울리는 의성어로 괜찮은가?

 

나무 윗부분, 알갱이가 숨어있는 몸집 창고에 온몸으로부터 모은 팔의 힘을 골고루 분해하여 회초리질을 가했다. 좁은 방안에 자리하고 있던 들깨와 참깨 알갱이들이 비닐판에 쏟아졌다. 상당히 긴 시간 나무 패대기치기까지 더해졌다. 지켜보던 나는 매우 지루했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 버릴까 했다가 그곳에 계속 머물렀다. 우리 엄마가 곧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토록 가늘고 작은 몸뚱이에서 어떻게 그런 힘이 솟아났을까. 그렇다고 우수수수 알갱이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얼마나 눈물겨웠던지.

'불쌍한 우리 엄마'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불쌍한 우리 엄마!

 

참깨.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이후 대여섯 번, 아니 그 이상 아직 알갱이를 떨구지 못한 나뭇가지가 혹 있지 않나 확인하셨다. 더러 확인되면 아직 알갱이를 담고 있는 주머니, 그 부근을 다시 털고 또 확인한 후 나뭇가지들을 거둬낸다. 다시 또 한 번 알갱이들을 모아 사이사이 끼어있는 나뭇가지 조각들을 잡아낸다. 일이 끝난 시각은 진즉 날이 저문 저녁 끝이었다. 모아진 들깨의 양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하느님도 너무 하시지. 온 세상에나 그 많던 들깨나무에서 모인 알갱이가 저것밖에 안 된다니. 세상에나, 너무하고 말고.'

나는 벌써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불공정을 간파하고 있었다. 분명 자연의 조화는 곧 하늘의 조화일진대 저게 뭐람. 온 세상에나, 해도 해도 너무했지. 우리 엄마가 쏟은 힘에 비해 들깨 알갱이는 내 눈에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고소한 참기름일 거다.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집에 들어오면 언니가 밥을 해놓았던가. 엄마는 머리에 이고 온 들깨 보따리를 마루에 내려놓은 보자기를 끌러 토방 마루에 얇고 넓게 펼쳤다.

'후루룩 후루룩~'

들깨를 펼치면서 말씀하셨다. 아직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엉거주춤 주저앉은 모양새로 말씀하셨다.

"와따 많네에~, 많다야 많아. 많이 수확했다야."

얼굴 가득 빵빵하게 빛나던 최고의 만족도. 엄마는 그을린 낯빛 위에 아마 자식 여덟, 대도시에 사는 모습들의 얼굴과 몸을 세웠놓고 하신 말씀이셨을 것이다. 큰딸에 막둥이 아들까지 쓰담쓰담 쓰다듬으면서 하신 말씀이셨을 거다.

'내 열심히 살아서 니들 몸뚱아리 건강하고 니들 온 정신으로 살게 할탱게 말이다. 잘 살아보자이~ 내 새끼들아, 으짜든지 잘 살자잉.'

당신의 삶 역시 자식들이 서 있는 곳 끝자락에 조심스레 세웠을까. 초저녁 이른 수면에 들어 끙끙거리면서 우리 엄마는 또 다음 날 자식들을 위해 몸 바치려고 온 정성을 다해 힘을 그러모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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