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두커피 더하기 시럽의 아침을 끝내자.
일터 1층에 일터 동료들의 자금으로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오직 나만 호흡하는 이른 출근 시각, 1층 공간에 들어서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직진하여 2층, 3층, 4층으로 오를 것인가. 1층 현관에서 우회전하여 카페로 향할 것인가.
'어디로 갈거나.'
대학원 석사과정 3년 세월은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는 시간이었다. 1년 여 서너 시간을 자면서 공부하여 합격하였다. 억지 공부가 아니었다. 대학 전공과 영 관련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이상의 것을 공부하는 내용이었다. 합격을 몇 군데 자랑할 만큼 대학원은 행복하였다. 내 생, 진정한 공부라 여기면서 시작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나의 전담 교수님의 성실함으로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최고로 행복했던 때라고 주장하는 대학원 시절, 허벅지를 꼬집어가면서 강의를 들었다. 왜 그렇게도 잠은 왔을까. 일부러 교수님 강의대 앞에 앉았다. 잠을 쫓기 위해 쉬는 시간이면 어리숙하게 배워둔 지압을 해대면 온전한 정신을 찾고자 애를 썼다. 매시간, 쉬는 시간마다 커피 자판기를 이용하였다.
나를 살게 한 것은 8할 이상이 커피였다. 비단 대학원 시절로 커피가 한정된 것은 아니다. 커피 맛을 알면서부터는 줄곧 마시는 것이 커피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돈벌이를 시작한 이후이긴 하리라. 삶이 빠듯했으니까. 물론 처음 커피를 맛보던 날의 행복함이랄지 커피 때문에 벌어진 의미있는 일거리 등은 지니고 있지 않다. 그냥 커피와 친해졌다. 단지 가까워졌을 뿐이다. 내 생에 커피에 관한 특별한 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이 커피와 급히 가까워지게 된 시기인 것은 맞다. 확실하다. 정확하다. 젊지 않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아무리 하고 싶었을지라도 힘든 것이 사실이었다. 아이를 낳으면서 내가 치러야 했던 2박 3일간의 고행은 나의 뇌세포를 완전히 지치게 했다. 피부보다 먼저 뇌세포가 지쳤다. 백옥처럼 하얀 나의 피부는 너무 여리고 가냘파서 나이 먹기가 쾌속이었다. 이에 버금가게 뇌세포와 그곳에서 생성된 내 영혼도 지레 늙었다. 전신 마취 정도의 특수 의술을 적용해서야 내 아이는 세상으로 나왔다.
가끔 읽을 수 있는 뉴스를 생각해보라. 칠십, 팔십 심지어 구십에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고작 아이 대여섯 살 된 주부인데 뭐가 어려우랴. 그대, 너와 동행하는 삶을 사는 이, 당사자인 너 못지않게 너의 대학원 입시 준비에 기꺼이 동참해 주지 않았느냐. 하라, 해 보라. 하면 된다."
보름을 지난 하현달이었을까, 삭을 바라보던 시기의 그믐이었을까. 찬 기운을 온몸으로 저항하면서 새벽을 뚫고 대학원 시험을 치르던 날이 있었다. 아이를 업고 와서 차 뒷좌석에 잠재운 채 달려가서 치렀던 시험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면서 조울조울 자는 아이를 깨울 때면 나의 대학원 시절을 떠올렸다.
'넌 네 아이 깨울 자격이 되나?'
'너 자신을 떠올려 봐라. 네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려 봐라. 무슨 ~'
쉬는 시간마다 커피를 마셔야 했다. 강의를 들으러 갈 때마다 커피믹스를 열 개씩은 담아 갔다. 종이컵도 가방에 담아 갔다. 미처 커피믹스를 준비하지 못한 날은 자판기의 커피를 빼먹느라 복도를 바쁘게 오가야 했다. 나만 마시기 미안해서 교수님들의 커피도 챙기곤 했다. 특히 영원히 존경하옵는 나의 담임 교수님. 정년을 한참 넘기셨을 텐데, 어찌 지내시는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지만 나는 내 몸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이 몇 줄 문장으로 통고해 왔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다. 병원과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풀어 써보자.
'당신은 먹는 행위 자체에만 심취했더군요. 앞뒤 생각하면서 먹었어야지요. 당신 내장은 당신 영혼만큼이나 불안정하고 여릿여릿하고 가냘픕니다. 당신은 이를 생각지 않고 음식이라고 생긴 것은 무엇이든지 마구 입 안으로 쑤셔 넣으셨어요. 당신은 당신 몸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계셨어요. 말하자면 당신, 당신은 참 무식한 인간입니다. 당신의 식탐으로 당신의 내장들이 불쌍해졌습니다. 심지어 예고해드렸는데도 당신은 개의치 않고 음식을 마구 퍼먹었습니다. 당신 소장이 한 주먹의 음식을 요구하는데 당신은 한 바구니의 음식들을 집어삼켰습니다. 당신, 당신은 참 알 수 없는 인간입니다.'
위가 전신을 통제하고 내장이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움직인다는 말을 실감했으니 너무 늦었다. 밀가루 음식을 끊으라 한다. 음식을 천천히 들라 한다. 오래 씹은 후 넘기라 한다. 적어도 백 번씩은 씹은 후 삼켜야 한다고 한다. 음식 섭취 후 서너 시간 아니 대여섯 시간이 지난 후 잠들라 한다.
커피도 마셔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럽 또한 양질의 당분이 못 된다고 한다.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은 자, 결코 생을 즐길 수 없다고 한다. 며칠 전 본 영화 속 한 줄을 패러디한다.
'너, 진짜로 아픈 것이 아니구나!'
늘 어중간한 삶을 사는, 자기 생을 통제하지 못하는 내게 내가 외친다. 일터 1층에서 우회전하여 카페로 향하던 발걸음을 다그친다. 참아라 참아. 직진한다. 2층과 3층을 지나 4층을 향하여 길을 오른다. 커피 더하기 시럽을 아침 빈속에는 절대로 마시지 않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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