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행운권 추첨 행사가 있다.
일터에서 행운권 추첨 행사가 있다. 자기 이름을 적어내면 된단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대상자의 범위에 들지 못한다. 운영본부에서 자꾸 어서 응모하라고 난리이다. 이상하다 싶어 이리저리 둘러보니 대상자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대상자도 아닌, 행운권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대상자들을 조른다.
"응모권을 어서 내세요. 왜 머뭇거려요?"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의미라니요. 뭔가를 공짜로 준다는데요."
"저번 행사 때 나온 상품들을 보니 쓸만한 것이 없었어요."
"그래도 재미있잖아요."
"재미요? 별것 없어요."
"혹 알아요. 제일 좋은 상품으로 당첨될지요."
"당첨될 확률도 거의 없어요. 거기 쓰는 정성, 다른 곳에 기울이는 것이 훨씬 나아요."
"그래도 행사인데~"
"행사요? 우리가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요. 안 내고 말지요. 관심 없어요."
담당자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 건을 이야기했다.
"대상자들이 별 관심이 없네요. 이를 어쩌나요?"
"왜 그럴까요? 참 이상해요. 공짜로 준다는데 통 즐거워하지 않아요."
"대상자를 좀 확대해줘요. 나는 하고 싶은데도 대상자가 아니어서 아쉬워요. 저라면 열심히 참여할 텐데요."
"아하, 안됩니다. 딱 정해져 있어요. 해드리고는 싶은데 여러 사람이 나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해달라고 할 겁니다."
담당자의 말이 천 번 만 번 옳다. 대상자의 자리를 넘볼 일이 아니다. 사실 대상자들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를 꼭 넣어달라는 것은 사실 농담이고요. 실상을 좀 알리고 싶었어요. 대상자들의 반응이 바닥이던데 이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래요. 계획된 것이고 하던 것이니까 끝까지 하라고 해서요."
그 말도 또 일리는 있었다. 담당자는 명령하달로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담당자 자신도 별 기대는 없었다.
시작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기획한 자들이야 큰 꿈이 있었겠지. 어떠한 방향에서든지 부풀, 어떤 것이 있으리라는 희망. 해야 된다. 해야 했다. 그러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줄곧 이렇게, 이런 반응으로 진행해왔다면 문제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 아닌가. 어떤 일에 부딪히면 '분석'하는 꼬락서니를 부리면서 사는 나는 대상자들과 나눈 대화로 문제의 근간을 파헤쳐본다.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자.
당첨될 확률이 너무 낮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확률에 좌우되는 자기 삶을 잘 안다. 이미 면역력을 길러냈다. 긴 세월을 어쩌면 사회며 제도가 뿌리는 당첨권에 당첨되기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에 반응해야 별 이익이 돌아오지 않음을 미리 파악하고 있다. 운영본부에서 실하고 알차고 많은 기회가 부여되는 일은 절대로 만들지 않음을 알고 있다. 기가 막힌 운이 따르지 않은 이상 자기 자신과는 무관한 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안다. 수많은 기회라는 것이 그러하였다. 그러므로 하든지 말든지이다.
상품이 '별것'이 못 된다. 옛 세상과는 다르다. 풍족하다. 남아 돌아간다. 굳이 애끓은 기다림의 법칙을 대응시켜 구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내 앞에 물질은 놓여 있다. '하늘에서 별을 따기' 식의 모험은 우스꽝스러운 치기이다. '별것'에 해당되는 것의 조건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는다.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든지 짝퉁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면서 연륜을 겸비한 희귀성이라는 면모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각자 소망하는 것과 완전한 부합이 되어야만 '별것'이 된다. '별것'이 '별것'이 되기 위해 미묘한 갖춤이 필요하다. 미묘함과 신비스러움을 겸비한 물건이 한낱 행운권 행사에 등장할 리 만무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한두 사람이 아니고 대중을 위한 행운권이 각 개인을 위한 고민을 할 리 없다. 현대인들에게 진정 별것이 되려면 온갖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재미없다. 현대인은 어지간한 것이 아니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극과 극으로 치달아 날카롭게 솟아오르거나 무너지거나 둘 중 하나의 끔찍함이 필요하다. 까닭 없이 구겨지거나 소모되거나 사라지거나 발악을 해야 한다. 당장 순간의 미학으로 오감을 두들겨 패야 한다. 사람의 심사를 건드리려거든 마법 이상의 요괴가 등장해야만 한다. 고작 행운권이라니. 그런 정도로 어떻게 '나'를 움직이려 하시는지 라고 툴툴거리면서 외면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유소년용 잡지에서 발행한 행운권에 당첨된 적이 있다. 내 아이도 어린 시절 학습지를 통한 행운권에 당첨된 적이 있다. 지금 진행되는 일터 행운권에 내가 대상자라면 필시 당첨 확률이 100%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뭔가. 아쉽다. 아까워라. 나는 여전히 시계풀 반지도 뜻밖에 얻게 된다면 소중히 여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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