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라이프/하루 공개

1인 시위 돌입한 것인가

반응형

 

 

 

 

 

1인 시위에 돌입했을까.

 

 

 

1인 시위에 돌입했을까 - 픽사베잉[서 가져옴

 

 

 

1인 시위에 돌입했을까? 여느 일요일과 다를 바 없는 오늘, 나는 참 아침 기분이 좋다. 느지막하니 기상한다. 지난밤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각이 자유로웠다. 조마조마하지 않고 밤을 지새울 수 있었다. 평일보다 두세 시간 혹은 네댓 시간까지 늘어지는 하루 시작 시각이 그다지 안타깝지 않은 이유이다. 전날 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뭐 그다지 거창한 일이 아니다. 소인배나 할 쩨쩨한 일일지라도 다음 날 아침 늘어지게 잘 수 있다는 여유로움이 어떤 일이든지 밤새 즐겁게 해낼 수 있게 한다. 휴일 전야의 묘미이다.

 

오늘 일정은 일요일 고정시간표대로 진행되었다. 치카치카 하기. 음양 수 한 컵 마시기. 토황토에서 구매한 난방 용기 주입용 복대 비슷한 것에 핸드폰을 넣어 유튜브를 작동시키기. 이어폰으로 유튜브 강의를 들으면서 화분에 물 주기와 화초 재배 및 관리 일체를 시행하기 등이다. 

 

오전 일정을 마치면 거의 점심 식사 시간과 가깝다. 함께 사는 이가 있을 때는 그가 해준 요리를 맛있게 먹는다. 나 혼자 있을 때면 최소한의 그릇에 최소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범위에서 음식을 차리고는 선 채로 점심을 해결한다. 물론 이때도 유튜브 강의가 동석한다. 

 

오늘은 셋이서 맞는 일요일이었다. 가끔 금의환향하는 언니가 함께하고 있다. 비단옷에 버금가는 고액의 의상과 가방을 착용하고 내려왔으니 출세하여 고향에 내려온 것이나 다름없다 친다. 눈 찔끔 감고 나는 억만금을 줘도 사입지 않을 옷을 입고 다니는 재미가 어떠냐고 혀를 놀리고 싶지만 참는다. 온몸 녹여가면서 길러낸 아들딸들이 사서 입힌 옷이니 잘 입고 다녀야 마땅하다. 가끔 남편 없는 노년이 얼마나 편안하냐며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씁쓸한 입맛을 다시면서 말하면 또 얼마나 안쓰러운지. 나, 오늘, 잠깐 언니 친구들의 그런 치사한(?) 말에 동의할 뻔했다. 잠깐, 아주 잠깐. 

 

 

 

 

지금 이 시각,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 우리 집 거실에서는 두 개의 유튜브가 가동되고 있다. 화분에 물 주기를 한참 하던 차에 언니는 금의환향이 아니어도 어서 오기를 바라고 있는 지인들을 만나러 이 도시의 대표적인 수산물 대형 상가 쪽으로 외출했다. 혼자 몸으로 아들딸을 기르느라 발버둥을 치던 날 사귀었던 사람들이다. 형제자매보다 더한 온정을 주셨던 사람들. 언니는 내려오면 나보다 그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리하여 이 집의 오늘 낮 동안은 또 평소와 다름없이 둘이다. 

 

대부분의 일요일 우리 집 오전 모습 그대로이다. 내가 화분에 물 주기를 열심히 하는 동안 또 한 사람은 아침 식사 후 그릇 씻기 및 부엌 정리를 한다. 그것만 말끔히 끝내면 그의 남은 시간은 자유이다. 한문학을 열심히 공부한다. 사서삼경이며 중국 고전 시문집을 들이 파고 있다. 재미있단다. 어쭙잖은 글을 쓰고 어중간히 그림을 그리고 어중간히 영화에 빠져 사는 나와 그는 자본주의와는 거의 궁합이 맞지 않은 분야에 각각 뜨거운 열정을 뿌린다. 내가 하는 일은 하루 온종일 매달려서 해야 한다. 영화가 있어 그렇다. 어떤 날은 두세 개의 영화를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수도 있다.

 

중국 고전 시문집 공부 정도는 나와 조금 맞을 수도 있겠다. 그것도 해설해놓은 우리말 책일 때 말이다. 사서삼경을 통한 해탈 이후 그의 나머지 여가시간 이용 내용은 나와 평행선이다. 그의 것은 완전히 실외용인데 나의 것은 실내용이다. 그가 최근 꽤 많은 시간을 들여 몰입하는 것이 달리기였나 보다. 새벽녘 어딘가 운동복 차림으로 나다니고 저녁 식사 후 또 어둠을 뚫고 운동복 차림으로 나다니는 것을 운동 마니아라서 그러나 보다 했다. 그리운 지리산이 사람을 밖으로 나돌게 하는 것이었나 보다 생각했다.

 

 

마라톤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전국 단위 마라톤대회 출전을 준비하고 있었단다. 가족 카톡방에서 아들과 나눈 대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불행히도 대회 가까운 날 용산 참사가 터졌다. 대회는 취소되었다. 짙은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아들과 나눈 대화를 읽고 알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참가에 의미를 둔 것이 분명하므로 대회가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으리라. 실시되지 못한 것은 남자의 욕망을 헤집어버렸나 보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세상 속으로 진출하려던 갈망이 휘저어졌나 보다. 이후 상당 시간을 코로나 시대로 되돌아간 생활이었다. 주중에는 실내 골프로 주일에는 들로 산으로, 그리고 가끔씩 야외 골프로. 남은 아쉬움은 유튜브의 마라톤 관련 영상 보기인 것 같았다.

 

 

중요한 것은 영상 보기를 내게 거침없이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제 갈 길로 들어선 다음 우리는 단 한 마디 언어 소통도 없었지만 자기 생활을 해왔다. 상대방의 여유시간 보내는 방법을 침범하지 않는다. 각자 하고 싶어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상대방 개인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생활한다. 단 한 번도 여가생활 관련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은연중에 알게 된 각자 취미활동을 절대로 만지작거리지 않는다. 심지어 상대 여가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말소리도 줄인다. 말을 나누는 횟수도 최소한이다.

 

서로 다른 영유아기며 청소년기를 살아왔으니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런 생활 방식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잘 사는 것이라고 은근히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육아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전제로 평생 이 생활 방식이 당연하다 여겼다. 

 

이귀 -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키만큼이나 컸다.

 

 

 

자, 오늘, 나의 일요일 오전 활동이 끝났다. 서너 차례 점검했다. 화분에 물 주기가 아직도 정석을 익히지 못했다. 영원한 고행이자 끝없는 행복의 문에 입문한 자가 치러야 할 의식이라 여긴다. 혹 물을 주지 않았는지 이리저리 들여다봐야 하는 작업도 즐겁다. 베란다에 널찍하게 자리 잡아 말리고 있는 감말랭이를 오며 가며 주워 먹는 일까지 오늘은 참 재미있었다. 물론 어서 화분에 물 주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입 앙다물고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문득 마음만 먹으면 집 안에 있는 모든 화분을 밖으로 내보내리라 생각하고 있으므로 물 주기를 하면서도 녀석들과 헤어질 생각에 막막해하기도 하였다. 이를 어찌해야 한담?

 

마침내 일요일의 내 생활로 복귀했다. 간이 복대에서 핸드폰도 꺼내고 유튜브도 우선 멈춤을 하게 하고 이어폰도 귀에서 분리했다. 오늘은 간헐적 단식의 규율도 실천하지 않았다. 한양 언니의 잔소리에 병어구이 살 부분을 두 사람의 아침 식사에 끼어 먹었다. 점심은? 점심은 그이가 콩나물 등 이것저것 섞어 만든 비빔밥을 만들어 대령하였기에 이 또한 성스러운 양식이라 여기며 먹었다. 

 

점심 후, 당연한 일정으로 남자는 골프를 가야 한다. 가야 맞다 생각하는데 가질 않는다. 수산상가 절친들에게 나간 언니로부터 사 들고 갈 생선이 무거우니 데리러 오라는 전화를 받는다. 곧 가겠다고 한다. 한데 여전히 거실 한쪽에서 수선스럽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작업을 어수선하게 할 만큼 큰 볼륨으로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힘들지 않으세요? 헉헉~ 원장님, 지금 잘하시는 겁니다. 남편분도 좋아하실 겁니다. 헉헉~. 하시는 일은, 요즘도 잘 되지요?"

"와우, 헉헉, 이젠 조금 힘들어졌어요. 예. 그럭저럭 잘되지요. 휴, 우리집 아저씨, 지금 엄청 달리고 싶을 겁니다. 정말로 뛰기 힘드네요. 조금 속도를 좀 줄여야되겠어요"

유튜브로부터 내게 들린 내용이다. 분위기를 살려 한 도막 옮겨 적어본 것이다. 마라톤을 준비하는 어느 아줌마와 코치의 대화 내용이 담긴 영상인가 보다. 

 

화분에 물 주기를 마치고 거실로 들어오면서부터 들었던 이런 종류의 영상을 점심 식사 후 지금까지 계속 내게 듣게 하고 있다. 이 남자, 왜 저럴까. 이상한 일이다 싶어 일요일이면 듣는 내 영상의 볼륨을 키운다. 어쩌다가 볼륨이 커진 것이겠지. 그는 끄떡하지 않는다. 영상의 이상 볼륨 크기를 고집한다. 의도가 무엇일까. 듣고 있나? 나 요즘 이런 것 하고 있어. 무엇인가 내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는 듯싶다.

 

새벽녘과 저녁 시간에 마라톤 준비를 위해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이며 뒷산을 걷고 달리는 것이 외로웠을까. 곁에 함께 달리면서 '하나 둘 하나 둘', 한 여자 곁에 함께 달리면서 구령이라도 붙여야 했을까. 대체 부부인데 이 긴 날들을 어쩌자고 각자 놀음이냐고 항의하는 것일까. 1인 시위를 유튜브 영상 뽀개기로 하는 것일까. 난감해하던 차 전화벨이 울린다. 골프 모임이다.

 

아귀가 먹어삼킨 어린 물고기 - 손질은 언니가 한다. 나는 늘 공주님이었다.

 

 

 

내가 이겼다. 시내 수산상가로부터 언니를 모셔오더니 남자는 집에 올라오지 않았다. 실내 골프가 약속되어 있더란다. 오늘은 특별히 처형이 와 있으므로 저녁 준비를 위해 오후 여섯 시에는 귀가하겠노라는 말을 남겼단다. 처형이 사 온 덕대 큰 아귀이니 여섯 시에는 꼭 들어와서 아귀찜을 끓이겠다고 했단다. 아귀찜을 먹고 싶은 것이겠지. 실하디실한 아귀찜을 처형이 사 온 덕분에 입에 넣을 수 있으니까. 나와 단 둘이 있는 동안은 절대로 맛볼 수 없는 요리이니까. 일반 식당에서 먹는 아귀찜으로는 5인분은 시켜야 먹을 수 있는 살집이니까.

 

 

아귀찜 - 픽사베이에서 가져옴. 오늘 내가 먹은 아귀찜은 최고였다. 먹는 데에 온 정신을 쏟느라 사진 촬영을 놓쳤다, 이런!

 

 

무릎 보호대가 어디 있던가. 벌써 무릎이 걱정되니 달리더라도 무릎 보호대를 하자. 흰 목장갑도 좀 찾아 끼고. 아침은 안 되고, 아 오후도 힘들다. 그렇담 결국 주말이구나. 주말 중 어느 하루라도, 어디 한번 마라톤을 준비하는 사람 옆에 서서 나도 달리기를 한판 해볼거나? 

 

출근하지 않는 주말이어서 어중간한 아침 일기를 길게 쓰면서 가는 일요일을 아쉬워한다. 어찌 이리 쉬는 시간에는 속사포가 가동하는 것일까. 

반응형

'라이프 > 하루 공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녀가 또 상경한다.  (39) 2022.11.22
블로그 제목의 위력에 박장대소하다  (32) 2022.11.21
잡것!  (32) 2022.11.19
한탄으로 자기 반성을 하다  (27) 2022.11.18
까마귀가 까마귀에 대한 편견을 뒤엎다  (29)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