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중에 피부 습진. 코로나19로부터 선물 받은 또 한 가지 - 거부하고 싶은~
피부 습진. 코로나19로부터 선물 받은 또 한 가지.
출근. 걸리는 것이 있다. 마스크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겁난다. 올여름 인중 부분에 질병 한 가지가 얹어졌다. 코와 입술 사이 피부에 붉은 점이 울긋불긋하다. 이지러진 붉은 꽃이 무질서하게 피어났다. 7월 말이었다.
난생처음이다. 단 한 번도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다. 가장 싼 기초 화장품을 바르면서 살아왔다. 여성에게 걸릴 것 없는 화장품 사용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주위 친구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화장품 때문에 성장 이후 평생 피부과를 다닌다는 지인을 본 적이 있다. 얼굴 잘생긴 것이 무슨 소용이냐. 화장품을 가리지 않고 바를 수 있다면 미인 얼굴일랑 부러울 일이 없다. 피부과 단골손님이 된 미인 지인은 나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조카가 월급을 받게 되는 전문 인력이 되면서 내 화장품값 지출은 아예 사라질 정도가 되었다. 가끔 생전 처음 보는 고가의 화장품을 받아쓰기도 했다. ‘가시내, 월급 몇 푼 된다고 이리 고급품을 사용할까?’ 딸 집에 갔다가 굴러다니는 것들 모아 왔다면서 언니가 내놓은 화장품들을 뒤적거리다가 내 혼잣말을 읊자 언니의 대답은 요즘 젊은 애들은 자기 뜻대로 살더라며 내게 하소연한다. ‘지들 내가 어찌 키웠냐. 뭔 화장품을 이리 사대느냐고 했더니 상관 말라는 눈치더라. 더 말하지 않고 그냥 싸 왔다. 집에 있는 내가 뭔 화장품을 바를 일이 있겠냐. 너 발라라.’ 몇 년 조카의 화장품을 열심히 발라왔다. 습관대로 유통기한도 확인하지 않았다. 심지어 골라서 발라야 할 만큼 화장품이 넘쳐났다.
마스크도 내게는 화장품이었다. 있는 대로 걸치고 다닌다. 색깔도 디자인도 심지어 기능성도 고려하지 않고 사 놓으면, 집에 있는 것 아무것이나 그냥 집어서 쓰고 다닌다. 고백하건대 2일, 혹은 3일까지 쓰고 다녔다.
인중 부근 피부의 붉은 반점을 발견한 것이 7월 말쯤이었다. 더워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깜짝 놀랐다. 왼쪽 윗입술 윗부분의 불그스름한 꽃은 시든 꽃잎 한 장을 제 몸 곁에 더 붙여둔 것이다.
증상은 묘한 기분 나쁨이었다. 이게 뭔가 싶어 얼음덩이 몇을 얹어 열기를 누그러뜨렸다. 열기나 냉기, 부풀림이나 고름 차기 등 겉으로는 어느 증상도 없었다. 그러나 조심스레 만져본 검지 끝 모세혈관이 신중하게 감지한 것은 꺼림칙하다는 것이었다. 높이의 차를 거의 분간할 수 없으나 분명 울퉁불퉁한 환부의 표면은 미세한 끈적거림까지 지니고 있었다. 장마철 시작 즈음 정도의 습도를 유지한 상태에다가 가늘게 거친 면의 부스럭거림도 느껴졌다.
하루 이틀 살펴보니 이웃 지역에 자기 힘을 펼친다는 것이 걱정이었다. 다섯 살도 되지 않았던 때 음식물을 잘못 섭취했던지 온몸에 왕방울만큼 큰 두드러기가 전신을 점령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은 이틀도 살지 못하고 내 몸에서 떠났다. 아무런 약의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피부 관련 사건은 이것이 끝이었다.
때맞춰 통화를 하게 된 언니에게 증상을 말했더니 화장품에 관해서 몇 줄 이야기를 하다가 말의 방향을 돌렸다. ‘바셀린을 사서 발라 봐라.’ 바셀린. 어릴 적 피부에 바르는 용도로 사용한 약품(?) 중에 귀에 익은 것이었다. 피부 질병은 아니었는데 어디에 사용했을까. 바셀린을 찾아 발랐다. 이틀 밤을 발랐지만 붉은 기로 부스스한 인중 부분의 피부가 눈에 뜨일 뿐이었다. 더군다나 바셀린을 바른 인중은 클렌징 크림을 잔뜩 발라 닦아낸 후 폼 클렌징을 가득 비벼 씻어내야 한다는 것도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마침 외출을 나가던 ‘또 한 사람’에게 증상과 약을 주문했다. 골프 약속으로 바쁘다며 연고 하나를 주면서 바르라 하고 나가 버렸다. ‘광범위 피부질환 치료제 – 알레르기, 아토피, 습진 각종 피부질환’을 치료 분야로 적고 있었다. 워낙 한번 집에 들어오면 되도록 외출을 금기시하면서 사는지라 속는 셈 치고 한 방울 짜내어 발랐다. 다음 날 인중 쪽 울긋불긋함이 제법 사라졌다. 세상에나, 피부질환이라니, 어감상 영 기분을 좋지 않게 하는 ‘습진’이라는 낱말이 있어 더더욱 꺼림직했다.
더군다나 얼굴이었다. 그것도 인중 부위. 인중의 길이가 수명을 표시한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떠올랐다. 인중의 길이로 동안이며 노안을 드러낸다는 내용의 글도 읽은 적이 있다. 인중에 습진이라니. 얼굴 한 중앙 부위인데. 이틀이던가. 서너 방울을 발랐더니 괜찮아졌다. 나았다 싶었다.
오늘 출근을 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길을 걷는데 인중 부분에 열기가 느껴졌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공간에 들어서기가 바쁘게 마스크를 벗고 거울을 확인했다. 괜히 불그스레해 보였다. ‘습진’이라는 질병명이 떠올랐다. 나는 벌써 ‘습진’을 내 인중의 병명으로 고정하였다. 가만 이 병이 내게 생긴 원인을 뒤쫓아 추적해보기로 했다.
더위가 문제였나? 아니다. 작년, 그 작년에도 마스크를 끼고 다니지 않았던가 올해와 똑같은 방법으로 쓰고 다녔다. 더위는 문제가 아니다. 마스크를 이삼일씩 쓰고 다닌 것이 잘못되었나? 이것도 예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착용하고 다녔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신중하게 내 행동을 돌이켜 보니 걸리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화장품이다. 유통기한을 살피지 않고 사용한 화장품이다. 유통기한을 넘긴 화장품들을, 즉 조카에게서 헌납받은 화장품들은 유통기한을 넘기는 날짜가 점점 더해지면서 녀석들이 품고 있는 독기의 강도를 더해왔을 것이다. 예전처럼 피부를 개방한 상태에서 발랐다면 품은 독기들을 흩어지게 했겠지. 마스크를 사용한 상태에서의 인중은 열이 제대로 모이는 중심지이다. 더군다나 올해 유독 조카로부터 받은 비비크림을 많이 사용했다. 값비싼 것이었다. 이것이 문제로구나.
오늘 출근길은 비비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였다. 퇴근 후 씻고 나서 살펴본 인중은 별 탈이 없었다. 그러나 유통기한을 넘긴 비비크림이 문제라는 것으로 확정하였다. 집에 도착하여 쓰레기 봉지를 안방으로 가져왔다. 쏴아아아~ 유통기한을 지난 화장품들을 모두 버렸다.
늘 사용해오던 방법인데 유통기한이 문제였겠나. 내 피부의 면역력이 흐려졌으리라. 내 인중 쪽 근육이 낡아졌으리라. 그곳에 분포한 세포들의 기운이 쇠해졌으리라. 분명한 것은 ‘코로나19’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결국 코로나19로부터 두 가지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거부하고 싶은 선물. ‘이명’과 ‘습진’.
아까워라. 적어도 5년은 더 쓸 수 있는 양인데. 최고급 비비크림이 둘이나 섞여 있었다. 아까워라. 내 사용하는 화장품의 양으로는 어쩌면 십 년도 더 바를 수 있을 텐데.
정신 없이 바빴다. 하루 한 끼로 족해야 할 지경이었다.
오늘은 완성하려니 했던 그림은 맘에 들지 않아 다시 수선 중이다.
미술연필을 들 수 있었던 것으로 행복했다 치자.
나아지겠지.
내 손가락이 마술을 부리듯 씽씽 춤을 출 때가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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