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 창에 액자가 되는 풍경이 짙어진다.
늦었다. 여섯 시 기상 알람에 눈을 떴다가 잠깐만 눈을 더 붙이다가 일어나자고 한 것이 이십여 분을 삼킨 후였다.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아침 시간을 세내어 의상 코디해야 하는 식의 출근 준비가 아니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으나 현관에서 신발을 바꿔 신느라 몇 분을 소비해야 했다.
바깥 하늘이 어두웠다. 정확히 인식한 것은 아파트를 아파트 아래 작은 공원을 지나면서였다. 핸드폰을 켜서 날씨를 확인하면서야 어제 들었던 일기예보 내용이 떠올랐다. 바보, 바보, 바보. 흰색 운동화를 신고 왔구나. 비가 내리기 시작할 것 같았다. 오후 들어 비는 점점 강해질 것 같은데~, 일기예보에도 오후에 많은 비가 예고되었다.
임시저장 방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요즈음 이런 일이 허다하다. 그 빈도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순간 '치매' 검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제저녁 일부러 찾아본 다큐 형식에서 얻은 치매에 관한 정보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자기 스스로 치매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에서 벗어나 주변 사람이 혹시 나의 언행에서 '치매'를 느끼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라.'
오늘 또 한 건이 있었다. 언젠가부터 '디지털 사용'이 공포다. 날로 발전해가는 인터넷 사용 방식을 함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부터다. 앞서가는 속도는 제곱, 세제곱, 급기야 무한 속도로 치닫는데 나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생각이다. 확실하다. 급기야 무서웠다.
"어서 그만둬야 하는데~"
오늘 오전 일터 우리 팀 실에 있는 대형 복사기 앞에 섰다. 작동이 되지 않았다. 멈췄다. 누구 불러 묻기가 옹색해서 내 방 컴퓨터에서 일일이 프린트를 해서 오전 업무를 끝냈다. 오후에는 제법 많은 양의 복사가 필요했다. 팀 실 복사기에 실행을 명령했다. 팀 실에 갔다. 우리 팀 대장이 앉아 있었다. 물론 나보다 훨씬 더 나이가 적다. 젊은이이다. 그토록 스스로 다짐했건만(잉? 어쩌자고 트로트 가사?) 나는 결국 젊은이에게 도움을 청했다.
"왜 복사기가 작동하지 않음?"
젊은이가 왔다.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필요하면 알맞은 말 한 마디에 또 알맞은 행동을 엮어 보여주고는 끝이다. 어렵다. 솔직히 많이 어렵다. 물론 적은 말수가 한편 내게는 큰 힘이기도 하다. 나는 그야말로 남여노소 불문하고 말 많은 사람은 싫다.
왔다. 팀 동료인 젊은이가 복사기 앞으로 왔다.
팀 동료 젊은이:(재빨리 걸어와서 복사기 앞에 서더니 복사기 오른쪽 맨 위 메뉴를 오른손 검지로 꾹 누르면서) 됐어요.
'됐어요'였던가. 어쨌든 나는 '아차' 싶은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아하, 전원을 눌러야 하는구나."
'세상에, 하는구나라니. 당연한 것인데, 늘 해 오던 것인데, '하는구나' 라니. 그렇다면 이태 단 한 번도 복사기를 실행해보지 않았다는 것인가. 바보. 이런 바보. 왜 이렇지? 이것은 아닌데, 아, 또 저 젊은 사람이 얼마나 내 꼴을 어처구니 없어 할까.'
사실, 그와 나는 4년째 동료로 살고 있다. 바로 옆 방에 근무한다. 가장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이이다. 사적인 이야기까지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4년간 나눈 대화가 아마 일백 마디를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 하, 물론 술을 마시는 회식에서 정신을 내놓고 나누게 되는 대화를 제외하고 말이다. 말하자면 제정신으로, 공식적으로 나누는 대화에 가끔 양념처럼 말 주머니에 넣어 얹게 되는 사적인 대화의 양을 더해서 계산할 때 말이다.
복사기 사건을 지나 나는 오후 몇 시간을 자책하느라 허송세월을 했다. 이제 시간이 지나니 제법 '그러려니'의 상태에 묶어두고 저녁 식사를 야무지게 하긴 했다. 관심을 끄는, 내가 봐 왔던 방송들을 다시 열어보았는데, 오늘 오후 내 실수가 혹 젊은이에게는 '치매' 운운하고 싶어지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어 속상하고 짜증스러웠다.
정신 바짝 다잡아야겠다. 최근 '치매' 관련한 여러 영상을 확인해 보니 흔히 말하는 지적인 노동(?)을 꾸준히 하라든지, 운동을 열심히 하면 치매가 늦춰진다는 것이 결코 옳은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유전이며 운명일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불안하다. 퇴직하고 떡 하니 해외여행이라도 나다니려던 찰나 '치매' 판정이라도 받게 될까 싶어 걱정된다. 사는 게 참 걱정이다. 죽음을 어떻게 당해내야 하는지 불안하다. 죽음이 나 원하는 대로 예정되고 진행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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