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가 내 잠을 끊었다.
일기예보와 달리 그다지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장마 기간이라는 데도 말이다. 올해는 그냥저냥 지나가려나 보다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조금 앞당겼다. 늙을수록 잠이 최고이고 잠이 건강을 좌우한다는 강의를 여럿 듣고서는 평생 불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의 수면 습관이 불안해졌다.
몸 곳곳 나이 들어감의 신호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우선 온전한 통잠을 잘 수 있도록 생활 습관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여겨져서이다. 며칠 전 이곳 일기로 쓴 것처럼 우리 엄마 살아생전 초저녁이면 하시건 하품이 나한테서도 시작된 것이 또 한 이유이기도 하다.
어젯밤에도 자정이 되기 십여 분 전 하루를 정리했다. 아날로그 일기도 몇 줄 간단하게 썼다. 인연이며, 사람과의 관계를 논한 글귀를 가져와서 내일, 즉 오늘은 잘 살자고 다짐하는 문장을 기록했다. 사람이라고, 그래, 인간이라고 오늘 아침 눈을 뜨자 어제 그 험난한 스토리는 그저 있었던 일 정도에서 머물러 있었다.
나는 우선 빗소리에 내 모든 감정이 제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제, 지끈지끈 두통으로 살았던 하루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우당탕탕탕"
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참 한심스럽다. 새벽에, 내 잠을 끊어버린 장맛비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실, 우당탕탕 정도가 아니었다. 거대한 힘이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건물채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천둥 번개가 꽤 긴 시간 진행되었다. 눈 뜸과 눈 감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할 정도로 강했다.
거실에서 잠을 자는 내게 드넓은(?) 베란다를 통과해서 오는 데도 빗소리가 나에게 와서 부딪히는 느낌이 얼마나 건강한지, 어쨌든 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물질이 모두 좋다. 비며, 눈 모두. 한때 바람도 참 좋았지. 한데 요즈음 바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은 목록에서 뒤로 밀려 있다. 이 이야기는 새로운 판에서 꺼내기로 하고, 어쨌든 빗소리에 끊긴 내 잠이 그리 싫지 않은 아침이었다.
새벽이었다. 아마 새벽 다섯 시 삼십 분쯤 되었으리라. 순간 눈을 뜨고 끊긴 잠을 다시 이어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내 시각이 너무 맑았다. 내 뇌세포의 움직임이 단순 명쾌했다. 바로 일어서서 하루를 시작해도 될 만큼 정신은 맑고 정기가 용솟음쳤다.
아침 아날로그 일기를 루틴 열과 함께 얼른 쓰고 일어섰다. 녀석. 장맛비가 끊은 내 잠의 시간이 그리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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