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속 몸부림(?)의 시간을 줄였더니 나의 아침이 통째로 고상하다.
아침이면 으레 진행되는 일일행사인 '수면 명상 - 신경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치료용 수면 음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는 아웃시키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썸네일이 '임윤찬~'이다. 어제 인터넷 뉴스에서 기사를 읽고는 노 지휘자가 임윤찬의 연주 지휘를 마친 후 눈물을 흘렸다 하여 함께 울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바로 경연 연주를 보려 했으나 찾을 수 없어 안타까웠다. 나는 아마 임윤찬의 연주도 연주려니와 노 지휘자의 눈물을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임윤찬을 입력하였더니 4개월 전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홍석원 선생님의 지휘로 연주했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오늘은 만사 제쳐놓고 클래식과 함께 걷기로 했다.
최근 4, 5년 내 가장 빠른 출근. 뻐꾸기의 크고 작은 바늘들의 조합은 여섯 시 사십 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네 시간을 넘지 않았을 수면의 상태가 괜찮았는지, 아니면 보다 더 이른 출근을 할 수 있어 감개무량한 것인지 머릿속 상태도 참 맑았다. 오늘은 옷차림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운동복 차림이다. 오늘 내 일터 일부 업무에 맞춘 것이다. 영육이 모두 가벼운 최고의 아침이다.
이어폰도 생략했다. 선글라스에 마스크에 이어폰까지. 사실, 출근길 얼굴이 얼마나 수선스러웠는지 모른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어 걸고, 끼고, 하고, 걸을 때면 온갖 방법으로 부산을 떨면서 살아야 되는 현대인들의 슬픈 숙명이다 싶어 안타까웠다. 사실 강단지게 이어폰 끼기를 생략한 것은 '음악은 만인의 공용어'라는 야무진 생각에서였다. 각 개인의 주장을 펼치는 강의 내용들은 자칫 내 곁을 지나는 이들에게 소음일 수 있지만 음악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대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폰 볼륨 조절부에 고정시켜 걸었다.
오랜만에 듣는 클래식.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를 들으면서 걷는 출근길. 비록 운동복 차림(사실 내 일터 운영진들이 내 운동목 차림의 출근복을 확인한다면 놀라 나자빠질 일이다. 그들은 '구분'을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이지만 거리에 임윤찬과 라흐마니노프와 내가 함께 걷고 있다니. 아하, 젊을 적 '천재'셨다는 지휘지 홍석원 선생님과 광주시립교향악단 단원들도 함께 걷는 길이었구나.
어제와 그제보다 이십 여 분 빨리 걷게 되었으나 똑같은 길. 듣고 보게 되는 것들이 훨씬 더 많았다. 지지배배 참새들도 제 목소리들을 확실하게 울려 라흐마니노프와 함께 했고 이른 아침을 반려견과의 산책으로 작은 공원을 걷는 노익장 할아버지의 발걸음도 내가 들려드리는 음악의 리듬에 맞춰 걸으시는 듯싶었다. 분명 고상한 연구를 하실 듯싶은 쏙 뺀 정장 차림의 아저씨가 빠른 걸음으로 공원에 들어선 후 겉옷을 벗어 철봉 한쪽에 걸어놓고는 내 키보다 높은 철봉대를 낚아채어 운동을 하시는 데에도 임윤찬이 창조하는 라흐마니노프 선율이 두터운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유독 빠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경비 할아버지의 눈밖에 날까 봐 오늘 아침은 일터 외부 광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인도 시인이 감탄했다는 한반도의 어느 가을 하늘처럼 티 없이 맑은 유월의 여름 하늘을 폰 필름에 담았다. 사방으로 직립 고정된 차림의 십자가들에게도 오늘 아침 나를 호강시켜주는 클래식 선율을 공유하였다. 십자가 한쪽 선을 타고 의미 없이 팽창한 모양새로 오르던 나의 탐욕이 눈물 몇 방울을 더하더니 이내 흘러내리고 있었다.
공연 직관을 수시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클래식 공연 직관의 경험이 흐릿하다. 유튜브 영상으로 듣는 음악 만으로도 이렇게 황홀한데 직관을 하면 얼마나 더 감동적일까. 새삼 '경제 프리인'이 되어 문화예술을 마음껏 즐기는 이들의 '부'가 부럽다. 경제적인 프리를 사는 이들이라고 모두 그런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빠른 시일 내에 꼭 통장 하나를 더 만들어야 되겠다. 전시회와 연주회, 콘서트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돈을 좀 모아야 되겠다. 올 여름 휴가에는 꼭 임윤찬 혹은 조성진을 보고 들으리라. 그렇잖아도 '해외여행'을 위한 '절약 통장'을 하나 만드려던 참이다.
행복하다. 오늘은 마음껏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자. 운동복을 입고 움직여야 할 시간도 보다 클래시컬한 리듬의 스텝을 밟자. 어서 임윤찬의 경연 실황을 듣고 싶다. 노 지휘자의 아름다운 눈물을 함께 흘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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