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왔다.
결혼식 참여!
'차를 가지고 갈 수 없음.'
한 달 전부터 계획된 한양 다녀오기. 막히고 막히고 또 막히는 토요일의 한양 상경길을 절대로 차를 몰고 가지 못하겠다는 선언. 지정되어 있는 운전자가 말했다. 져주기로 했다. 다녀오면 꼭 벼슬길 다녀온 것처럼 지극히 과장된 태를 내는 모습을 나 역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싶어 버스를 예약해뒀다.
히스 레저에게 안녕을 좀 고하려고 블로그를 열었는데
" 지금 뭐 함? 지금은 나가야 될 시간이야!"
몇 줄 급히 올리고는 뒤따라 나섰다. 으~씨.
버스 길은 이래서 싫다. 출발부터 정해진 시각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 승용차로 떠나면 아무 때나 떠날 수 있는데 느릿느릿 거북이 모양새를 타고난 나는 딱 정해진 출발 시각이라는 것이 무지 싫다. 그렇잖아도 타인의 구획에 의해 살아내는 매일의 삶인데 일터가 아닌 이유로 떠나는 길일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헤쳐진 상태로 떠나고 움직이고 돌아오고 싶다.
차를 몰고 긴 여행을 떠날 때면 꼭 치르는 식도 버스를 이용한 길에서는 불가능하다. 출발한 길 처음 만나는 커피 판매처에서 커피를 사서 마시면서 가기. 운전 보조석에 타는 나의 특권이다. 한 잔 더 구입하여 긴 빨대를 꽂아 운전석에서 오는 명령에 따라 빨대를 물려주는 것은 나의 의무. 함께 구매한 과자도 내 입에 한 입, 운전자 입에 쏙 한 입.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없으니 얼마나 무미건조한가. 코로나 이후로는 그 어떤 것도, 입에 들어갈 것이 버스 안에서는 안 되노니.
그러나 차를 몰고 떠나는 길. 그 길을 포기한 이유가 있다. 출발 후 한두 시간은 쑥쑥 앞으로 전진. 그럭저럭 괜찮다. 북으로 북으로 한양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길어지면 운전자의 한숨이 시작된다. 길은 뚫려 있는데 나아갈 수 없는 현상. '정체현상'이라는 것으로 인해 북으로 가는 길의 운전자는 꼭 척추가 지르는 고함을 한숨으로 대변하는 통에 운전 보조석을 점거한 사람의 마음에 짐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쩌자고 이 길을 내 차로 가질 못하는가. 나는 왜 용기백배하여 이번에는 긴 한양길 내가 모는 차에 탑승하라는 말을 하질 못하는가. 에이 씨! 나는 절대로 길 위에서 한숨 쉬지는 않을 것인데 말이다.(라고 한댔더니 한번 해 본 후에 말하자고 하는 운전자!)
저 건강한 운전자, 철의 몸을 지닌 저 건강한 운전자는 운전보조석의 가녀린 몸매의 마음에 꼭 시푸르딩딩한 멍이 스며들도록 한숨을 표해야만 하는가. 현 건강 상태를 묻는 건강관리기관의 설문으로는 120년을 살 것이라는 예정을 부여받은 운전자. 그대, 반성하시라. 마음이 금세 '화'로 자신을 드러내고야 마는 자세인데 어찌 인생 백이십을 살겠는가.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세워 버스를 고집하는 자의 소망을 이번 한양행에는 들어주기로 했는데~.
그랬더니 이번 한양행은 터미널로 마중 나온 강남 아줌마 있어 다른 때의 배로 편했다네. 그 야무진 강남 아줌마가 환승을 시켜가면서 판교행 지하철로 갈아탈 수 있게 해 줘서 또 마음 진정되었다네. 그리고 강남을 조금 변형된 모습으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판교역에는 판교 아줌마가 또 우리를 마중 나와 있었다네. 어제는.
그리고 오늘. '축가'를 부르기 위해 '휴가'를 낸 내사랑이 있어 가족 상봉까지 했다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통해 수십 번 들은 내사랑의 '축가' 덕에 하행길을 또 행복 가득으로 채우고! 내사랑은 제 사촌을 위해 축가를 불렀지만 결국 나를 위해 불렀다는.
그래, 사람은 이렇게 사는 거다. 내 전생에 모아둔 덕이 많아 이렇게나 여러 사람이 마중 나오고 모셔가고 배웅까지 멋들어지게. 일목요연하게 진행시켜 주신 한양행 1박 2일의 고마운 이들이여. 진정 복이 있으려니!
사실, 1박 2일 한양 생활 중 나는 온갖 휘몰아치는 서정을 담고 하향했다네. 그에 관한 글들은 또 차근차근 써 내려가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 집 지키느라 고생했다는 말부터 내게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며 노려보는 이. 히스 레저에게 고마움을 담아 마음의 염念을 표하면서.
내일 이른 출근을 위해, 그리고 비록 짧을지언정 집 떠나면 담아오는 '여독旅毒'을 풀기 위해 자자. 어서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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