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고객에 불과하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의 고객이다.
옛날, 아주오랜 옛날. 컴퓨터라는 녀석이 인간계에서 탄생하여 알짜배기로 뿌리를 곧게 내리고. 영 이과와는 거리가 먼 내게 살아내려면 달리 방법이 없으니 어이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내 생의 문을 두드리게 되고. 그래, 살아야 하므로 어찌 저찌하니 어쩔 수 없지 싶어 이 녀석의 역사를 내게 기꺼이 받아들이고. 또 어느날 컴퓨터계 복선의 한 갈래로 탄생한 '인터넷'과 손을 맞잡게 되었으니. 아, 맞잡은 손은 상대가 있으므로 결국엔 또 무엇인가 새 생명을 발아시켰으니. 하여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은 인간계 숙명이랄 수 있는' 아이러니' 계를 뚫고 나아가는 힘을 발휘하기 위해 태어난 듯싶게 맹렬히, 사람들의 'buying'욕구에 편승하여 함께 내달렸으며. 지극히 '한평범 인간'에 불과한 나는 '책'이라는 환상의 덩이를 내 스스로에게 짐지워 기꺼이 내달리기로 했으며. 사실 나는 내 삶의 유일한 존속의 의미가 책 읽기라는 억지 버라이어티 쇼를 숙명으로 여기면서 이미 살아가고 있었는지라, 내 생은 긴 시간을 낼 필요 없이 인터넷 쇼핑몰 중 인터넷 서점과 함께 열심히 달리기를 진행시켰다.
뿌리는 줄기를 낳고 줄기는 '번식'의 본능 상 여러 길로 내달리는 천성을 타고난 관계가 우주 만물 성장의 원초적인 것. 인터넷 쇼핑숍의 가지는 우후죽순 범람했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내가 탄 배는 'yes24'였다. 동안 '알~', '굡~', '반~'등 여러 인터넷 서점 몇, 타 줄기들을 들락거린 것도 사실이지만 내가 거사를 치른 곳은 대부분 '예스24'였다.
당연지사. 인생, 짧은 것. 누구나 말하지 않는가. 천세 만세를 누린다 쳐도 인간은 '짧은'을 '인생'앞에 우선 세울 것이 당연지사다. 인간 본능의 코드를 굳이 길게 뽑아 올려 만지작거리지 않아도 뻔히 짐작이 되는 필수 요건. '인생사 단 한 순간', 토템을 또 무지 좋아하는 나인지라 '짧은' 이라는 인생의 운명을 얼싸안고 그 '짧은'을 소중하게 싸 안고 달리는 것이 내 생의 중요한 본분이라 여기며 열심히 움직였다. 인터넷 서점과 함께 내달리기. 나는 '나'여야 했으므로 내 탐욕 리스트 5위 안에는 늘 들어있는 '책'을 구입하는 것'에 집착하였다. 달리고 달리고 달렸다. 열심히 달렸다.
숏다리에 운동 감각이라고는 거의 제로 베이스에 묶여 있는지라 뭐 달린다고 얼마나 달렸겠느냐고 비난질을 할 내 이웃들이여, 멈추라. 내, 매년 4월 쯤이면 운영되는 전국 마라톤대회며 올림픽 종목 중 마라톤은 거의 대부분 지켜봐 온 사실을 당신네들은 모를 게다. 나는 울면서 마라톤 중계 방송을 시청한다. 모르셨을 게다. 내 알량한 지인들이여. 비록 내 육신으로는 빵점에 가까운 운동 감각이지만 내 정신적인 스포츠 능력은 대단하다오. 하여, 나, 정말 열심히 '예스24'에 들어가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렸다오.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나는 늘 '예스 24'의 스페셜 손님에 해당되었다. 요것이 또 참 묘하게 내 생의 진행에 유혹점으로 위치하였지. 보통 사람들보다 제아무리 많은 책을 구입한다 하여도 뭐, 얼마나 되겠느냐. '일반인'의 부류에 해당하는 것은 매한가지. '목구멍이 포도청'의 단계를 가까스로 비켜나서 살고 있는 지극한 시민의 처지인지라. 고로 새빨간 유혹점으로 등장하는 '예스 24 스페셜 손님'의 가치는 사실 생 무시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었다. 경제 용어 최고의 자리에 있는 '복리'의 혜택은 커녕 그네들이 정해놓은 날짜를 거스르면 바로 사라져버리게 작동하도록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주말 반짝 단돈 1000원' 등 스페셜 고객 혜택을 받으려면 마냥 일주일 단위로 도서 구입의 단계를 밟아야만 했다. 월급 100퍼 인상 등의 극적인 도약을 해야만 구할 수 있는 '도서 구입'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해댈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슬픈 스토리였지.
쟁여놓기 시작했어. 카트라는 바구니가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또 마술 수레야. 끝도 없이 담기거든. 이리하여 담아두고 저리하여 담아둬야 했던 카트는 신이 만들었기에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무대뽀의 덩어리여서 나는 그만 매양 담고 담고 또 담았어. 기가 막힌 것이 카트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할 가장 밑바닥 인간 본성을 '툭툭' 자극하는 것야.
"담아, 어서 담아. 곧 살 수 있어."
"담아, 담아, 어서 담아. 너는 그 책을 꼭 읽어야만 돼."
"담아, 어서 빨리 담으라고. 인간의 뇌는 되도록이면 매사 잊으려고 노력하면서 생존한단다. 생각해 보렴. 오늘을 잊어야만 내일일 오늘이 되면 새롭고 멋진 것을 또 담을 수 있을 거 아냐. 오늘 일을 잊어 봐라. 니 손해야. 어서 담아 둬. 간절히, 밑줄 좍좍 그어가면서 거창한 기운으로 읽어내고 싶은 그 책을 담아두지 않고서 너는 살아낼 수가 없어. 너, 좋아하잖아, 운명이야. 데스티니라고 가끔씩, 너, 뭔가 별 의미심장할 일도 아닌 것을 의미심장한 것처럼 포장하고 싶을 때 들먹거리는 데스티니. 너의 운명이야. 너는 책이 있어야 살잖아. 어서 담아 둬. 네가 담는다면 나, 카트, 제아무리 부피가 커도 폭발하지 않고 꽉 버틸게."
녀석, 그러나 카트는 가끔씩 내게 터무니없이 비만해져 가는 자신의 몸을 내게 부러 부딪혀오곤 했다. 진짜로, 바쁘게, 꼭 사야 할 책이 있어 로그인을 하고 사야 할 책을 담으면
"어이쿠나. 나 숨쉬기도 힘든데. 또 담는구나. 좀 비워내면서 살자. 너, 맨날 그러잖아, 가벼이 비워내기, 미니멈 실천하기. 제발, 부탁하건대 단 한 권씩이라도 좋으니 가끔 들러 내 몸뚱이 좀 줄여줘. 하여 네 텅 빈 뇌를 좀 채워가렴. 엉?"
하고 덤벼대면서 '주문'마저 못하도록 몸부림을 쳐대곤 했다.
나, 누구인가. 이겨냈다. 이도저도, 그 어떤 것에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은 일이 지극히 성사시키는 기쁨으로 살아감을 늘 깨닫는 나. '굳세어라 나 누구!'를 되뇌이면서 살아냈다.
아, 그런데 오늘 마침내 비워냈다. 그야말로 이제는 '단정한 정리'가 꼭 필요하다고 여겨져서이다. 더 늦기 전에 미니멈을 실천해야 함을 깨달아서이다. 여자 운명, 어미의 생을 대부분 좇는다는 말을 문득 어디에선가 흘려들은 기억이 떠올라 내 어머니의 평생을 계산해 보니 나의 생 또한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서 하자, 현재 내게 가장 필요한 짓거리는 간소한 일상을 꾸리는 것이다. 이사를 겁내야 할 만큼 베란다를 꽉 채운 화분들. 내 몸뚱이로는 단 한 박스도 움직이기가 힘들 책들. 이제 더 이상은 안 된다. 한 이년 전부터 나는 도서 구입을 거의 멈췄다. 화분 구입도 내 마음을 늘 올스톱을 부르짖는다. 삽목하여 새 생명을 만들어 키워내는 것을 못 멈춰서 여전히 탈이긴 하지만.
오늘, 지난 근무지에서 굉장한 성실함으로 나를 도와주셨던 한 분에게 선물할 책 구입을 위해 오랜만에 로그인을 하였다. '예스24'에는 무려 747권이 카트에 담겨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번 카트에 입장하고 퇴장하고를 해야 할 만큼 카트는 내게 몸부림으로 대꾸하였다.
그리하여 비웠다. 삭제도 한 번으로 되지 않았다. 무려 세 번의 '삭제'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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